링컨 선생 묘지에서 - 서정주
너무 가난하여 학교에도 못 가서
키보다 좁은 방에 웅크리고 앉아
밤마다 혼자 공부만 하던 의젓한 아이.
강물에 바진 동전 한 닢도
목숨처럼만 대견했던
숫드럽디 숫드럽던 촌뜨기 사공
불행한 사람들에겐 늘 인자하고
부당한 강권 앞엔 언제나 단호했던
단단한 키다리의 우리 털보 변호사.
미국 남북통일을 기어코 만들어낸
미국 이백년사의 제일 큰 대통령.
다리에 쇠사슬을 차고
경매대 위에서 싼 거리로 경매되던
전 미국의 깜둥이 노예들의 해방자.
그 가장 서러웁던 자들의 애인.
그 까닭으로 암살당한
성 에이브라함 링컨 선생님.
시카고의 미시건의 얼어붙은 만리호수에
유난히도 햇빛 잘나 그분이 생각나서
스프링필드 천리길을 그분 묘에 갔더니
어디서 나룻배를 젓다가 금시 갈아입고 서 있는 양
그는 이미 오랜 동상으로 굳어 서서
아직도 많이 꾸무럭한 얼굴로
'사랑이 모자라요.
당신들도 우리 미국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사랑이 모자라. 사랑이 모자라' 하십니다.
우리 한국식으로
맥주를 따라 고스레를 하고 나서
한 잔 그득히 부어 올렸더니
이 곡차 한 잔만은 그래도
주욱 들이키시고······. ................................P14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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