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산책 ▒/미당 서정주

질마재로 돌아가다 - [99] 링컨 선생 묘지에서

나무향(그린) 2013. 10. 22. 07:47

링컨 선생 묘지에서 - 서정주

 

너무 가난하여 학교에도 못 가서

키보다 좁은 방에 웅크리고 앉아

밤마다 혼자 공부만 하던 의젓한 아이.

 

강물에 바진 동전 한 닢도

목숨처럼만 대견했던

숫드럽디 숫드럽던 촌뜨기 사공

 

불행한 사람들에겐 늘 인자하고

부당한 강권 앞엔 언제나 단호했던

단단한 키다리의 우리 털보 변호사.

 

미국 남북통일을 기어코 만들어낸

미국 이백년사의 제일 큰 대통령.

 

다리에 쇠사슬을 차고

경매대 위에서 싼 거리로 경매되던

전 미국의 깜둥이 노예들의 해방자.

 

그 가장 서러웁던 자들의 애인.

그 까닭으로 암살당한

성 에이브라함 링컨 선생님.

 

시카고의 미시건의 얼어붙은 만리호수에

유난히도 햇빛 잘나 그분이 생각나서

스프링필드 천리길을 그분 묘에 갔더니

어디서 나룻배를 젓다가 금시 갈아입고 서 있는 양

그는 이미 오랜 동상으로 굳어 서서

 

아직도 많이 꾸무럭한 얼굴로

'사랑이 모자라요.

당신들도 우리 미국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로

사랑이 모자라. 사랑이 모자라' 하십니다.

 

우리 한국식으로

맥주를 따라 고스레를 하고 나서

한 잔 그득히 부어 올렸더니

이 곡차 한 잔만은 그래도

주욱 들이키시고······.  ................................P148~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