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녘 만 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백발의 시인. 강물이 흐르는 드넓은 공간 속에서 시인은 생각에 잠겨 있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이 바람은 집에 두고 온 가족들에게 불고서 그 숨결을 안고 나에게 불어오는 것일 터. 가족들도 오늘 밤 아마 나처럼 이 바람을 맞으며 가을을 느껴 서글퍼할 것이다. 집을 떠나온 지는 얼마나 되었을까. 이제는 그만 가족들에게 돌아갈 시간이다. 가족들 생각에 물결 따라 내려가는 배보다 집으로 돌아가고픈 내 마음이 더 다급하기만 하다.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지고 온갖 풀벌레들 울어대기에 나그네 시름은 점점 깊어지고 광활한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집 생각은 더욱 아득해진다. 그렇다. 저 멀리 별빛 아래서 가족들은 지금 등불 앞에 앉아 상자 속에 담긴 내 해진 가죽 외투를 꺼내어 어루만지며 나를 걱정하고 있으리라.
홍세태는 숙종 연간에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고 영조 초년에 생을 마감한 중인(中人) 출신의 시인이다. 이 시는 네 수의 연작시 가운데 두 번째 시로, 홍세태가 1718년 66세 때 한강을 따라 유람하다가 충주에 당도하여 지은 것이다. 『유하집』 권6에는 동호(東湖)에서 배를 띄운 시, 밤에 여주 목사 조공(趙公)과 이별하며 남긴 시, 충주의 탄금대(彈琴臺)에 저물 무렵 배를 댄 일을 읊은 시 등이 있어 당시의 여정을 대략이나마 엿볼 수가 있다. 충주를 중원(中原)이라고 불렀던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14 「충청도(忠淸道) 충주목(忠州牧)」 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양(漢陽)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한강의 나루에서 배를 띄워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광주(廣州)에 이르면 물길이 둘로 나뉘게 된다. 여기서 남쪽으로 길을 잡으면 남한강으로 접어들게 되는데 그대로 물길을 따라 계속 가다 보면 양근(楊根), 여주(驪州)를 지나 충주(忠州)에 닿는다. 가을로 접어드는 강안(江岸)의 풍광을 바라보며 천천히 노를 저어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뱃길에서 홍세태는 무슨 감정을 느꼈을까.
홍세태는 처음에 8남 1녀를 두었지만 불행히도 모두 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늦게서야 또 딸 둘을 낳고 키워 시집까지 보냈지만 둘째 딸마저 몇 해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났다. 참으로 참혹한 자식들의 요절을 겪으면서 죽는 것보다 힘든 삶을 그는 이어 오지 않았을지. 이 여행은 어쩌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삶에 주는 작은 위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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