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산책 ▒/풀꽃 김종태

[풀꽃/김종태] - 풀꽃 너는인생- 상계동에서

나무향(그린) 2012. 7. 30. 07:01
풀꽃 너는인생- 상계동에서

 

밀리고 또 쫓겨

더러는 논둑 밭둑 길가에

개골창 도랑 옆에

묵정밭이면 궁전이라네

 

개발에 쫓겨

돈에 밀려

상계 3동 107번지 30통 8반

뜯긴 자리마다 새 살이 돋고

뽑혀 던져지면 그곳이 새 터전

밟힐수록 뿌리 단단히 내리고

기음매고 돌아서면 웃으며 고개 든다

 

방 한켠에 일곱 식구

눈을 들어 손 뻗히면 잡히는 별

귀 기울이면 간이화장실 낙수물 소리

 

살아서는 못다 풀 버거운 짐

죽어서도 벗을 수 없는 몽근 짐

굶어 죽을지

말라 죽을지

뽑혀 죽을지 얼어 죽을지

 

널리고 널린 죽음에 정들면

죽는다는 것은 무섭지 않다

살기도 벅찬 석비례 땅에서

죽음을 염려하는 것은 사치이다

 

최저임금제

생활보호대상자 취로사업

엥겔계수 55 슈바베계수 30

흙바닥 맨발

반들반들 터진 손등

누렁코 쓱 문지르면

왕자가 셋 되는데

그놈들 맑은 눈을 들여다 보면

하루는 살 맛이 나고

하루는 죽을 맛 난다

 

살기로야 말하면

이보다 더 혹독했던 그때도 살았는데

명아주 씨는 싹트이기를

1700년이나 기달릴 수 있고

사막의 씨앗은 비오기를 기다려

하루만에 싹트고 꽃피고 씨맺는다

 

꺽여도 아물고

잘려도 싹나고

비바람 땡볕이야 가릴 것 있나

비 속에서도 꽃은 피고

눈 속에서도 뿌리는 살찐다

 

긴 한세월 지나

보통 놈은 퇴비로

연한 놈은 사료로

순한 놈은 나물로

독한 놈은 약초로

질긴 놈은 공예품으로

아무 쓸모도 없는 놈은

몇백년 쓰일 곳을 기다리다가

누워 거름이 된다

 

못 배우고 못 먹고 못 살았어도

자식만은 학사모를 씌운다

 

보도블럭 틈에서

짖밟혀 문드러진 민들레가

시월 하늘로 홀씨를 날린다

나는 못나 이곳에 떨어졌어도

너만은 저 멀리 좋은 곳으로 가거라................................P111-112-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