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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야기 - (1) 오늘의 나는 무엇인가

나무향(그린) 2011. 6. 30. 06:48

오늘의 나는 무엇인가 - 법정스님

 

 "전생의 일을 알고 싶거든 현재 내가 받는 것을 보라. 내생의 일을 알고 싶거든 현재 내가 짓고 있는 것을 보라."

 

<인과경>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삶과 죽음을 끝없이 되풀이 하는 삼사라의 세계에서, 인간 존재는 마치 바다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방울처럼 여러 다른 존재들과 어우러져 한 생명의 바다를 이루며 이런저런 관계로 얽혀 있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함은 인연법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부처님은 인因과 연緣의 진리를 깨닫고 나서 그것을 설할 것인가를 놓고 망설였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욕망을 즐기고, 욕망에 빠지고, 욕망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법을 설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증아함경>에서 부처님은 "인과 연의 법칙을 이해하는 자는 진리를 아는 자이다."라고 했다.

 

 한편 인과 연의 법칙에 대해 부처님은 <상응부> 경전에서 이렇게 정의한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삶은 동시적 의존관계로 엮여 진행된다. 모든 존재는 인과 연의 법칙에 의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떤 존재도 우연히 혹은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그 존재를 성립케 하는 원인과 조건이 있다. 나는 너의 원인과 조건이 되고, 너는 나의 원인과 조건이 되어 줌으로써 우리는 함게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을 진리의 세계에서는 상호의존적 존재라고 한다. 내가 사라지면 너의 존재도 소멸된다. 너의 존재가 사라지면 나의 존재 역시 소멸되어 버린다.

 

 한 생에서 뿌린 말과 행위의 씨앗들은 그 생애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 또 다음 생으로 이어지면서 생의 보습을 결정짓는다. 나와 너의 관계는 신의 장난처럼 우연히 이루워진 것이 아니라, 전생에서 뿌린 업의 결과다.

 

 자신이 부린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고스란히 거두게 된다는 것이 우주의 질서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은 잔상으로 남아 다음에 올 일들에 영향을 미친다. 마치 안개 속에서 옷이 젖듯, 향기 속에서 냄새가 배듯 훈습이 된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업의 파장이라고 한다. 우리가 순간순간 일으키는 마음, 생각, 행동이 모두 업이다. 자신이 지은 업은 반드시 이번 생이나 다음 생에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이것이 바로 인과관계의 질서이다. 부처님 역시 보리수 아래의 깨달음 이전에 몇 겁의 나눔이 있었다. 깨달음은 그 나눔들의 결과인 것이다.

 

 모든 존재는 행복을 추구하고 불행을 피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다. 인과 연의 법칙은 불행의 원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 원인을 바로 잡을 수 있는가를 밝혀 주는 진리이다.

 

 그러나 자신을 형성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지금 이 순간의 자기 자신에게 있다. 아무리 의적 환경이나 관계들이 전생의 삶의 결과라 할지라도, 그것이 지금의 자기 자신과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 인연론은 운명론과 다른 것이다. 자신이 지금 이 순간 어떤 생각과 말과 행동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앞으로 이어질 삶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법구경>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설한다.

 

 "오늘은 어제의 생각에서 비롯되었고, 현재의 생각은 내일의 삶을 만들어 간다. 삶은 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니, 순수하지 못한 마음으로 말과 행동을 하게 되면 고통이 그를 따른다. 수레의 바퀴가 소를 다르듯."

 

 삶에는 많은 방향이 있으며,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가는 지금 이 순간의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이 선택의 자유는 가장 큰 선물이다.

 

 인간의 삶은 날실과 씨실로 짜 나가는 한 장의 천이다. 지금 이 자리, 그대가 더하는 실은 무슨 빛깔인가.

 

 이 책 <이연 이야기는>는 존재의 속얼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이야기들이다. 비록 설화라 할지라도, 이 삶 속에 들어 있는, 피 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한 진실이 그 속에 담겨 있다.

 

 대장경(불교 경전의 총서)에서는 재미있고 교훈적인 옛이야기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본연부本緣部는 대부분 신화와 전설이 뒤섞인 옛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합리적인 논리로 전개되는 경전과 함게 이처럼 비합리적인 설화가 경전으로 결집되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이와 같은 전생 이야기나 비유 속에는 부처님이 현세의 수행만으로 정각을 이룬 것이 아니라, 끝없는 과거 속에서 보살(구도자)로서 많은 덕을 베풀어 현세에 부처님이 되었다는 인과관계가 담겨 있다. 보살은 사람으로서만이 아니라 때로는 천신으로, 또는 온갖 짐승의 생을 거치면서 삶과 죽음을 끝없이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인연 설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조연이나 방관자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 모습들에서 오늘을 살고 잇는 우리들에게 유익한 교훈을 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물론 이런 비유나 인연 설화가 불교만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고대 인도 사회에서 전래된 민담이나 전설 속에 들어 있는 재미있고 교훈적인 이야기에 불교적인 입김을 불어넣어 그 틀을 바꾸었을 뿐이다. 말하자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이나 짐승 또는 천신들을 보살로 바꾼 것이다.

 

 이 책에 옮겨 엮은 이야기들은 모두 본연부에 속한 경전에서 가려 뽑은 것이다. 본연부의 대표적 경전인<자타카>는 부처의 전생 이야기라는 의미로 본생담本生譚이라고 한다. 고대 인도에서 전해 내려온 설화와 우화, 옛날이야기들을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어 세계 설화문학의 찬란한 보고로 손꼽힌다. 이 <자타카>가 부분적으로 번역되어 전해지는 것이<현우경賢愚經>과 <잡보장경雜寶藏經>이다. 이 들은 불타 전기 비유문학의 정수로 알려진 경전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통속적인 이야기 속에 불교적인 교훈을 담고 있다. >법구비유경法句譬喩經>은 경전의 이름 그대로 법구法句의 비유와 그것이 생겨난 인연을 말한 경전이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소설 읽듯이 계속 읽어 나가지 말고, 한 편 한 편 그 의미를 음미하면서 읽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비슷비슷한 주제와 이야기 전개에 식상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그리고 이야기 끝에는 읽는 사람이나 옮기는 사람이나 서로 덜 지루해지도록 객담(주석을 가장한 군소리, 이른바 평석)을 넣었다. 이 책을 옮겨 엮으면서 바탕으로 삼은 경전은 <고려대장경>과 <한글대장경> 및 <자타카>이다.

 

 M. 엘리아테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신화나 전설에 귀를 기울이는 까닭은 단순한 사실에 기대어 우리들의 역사적 상황을 잊고 신성한 시간 속에 자신을 몰입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2,500년 전 부처님 앞에 앉아 이야기를 듣듯이, 한 편 한 편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의 의미를 음미하며 읽어 주었으면 한다.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의 나는 무엇인지, 과연 나는 하루하루를 나답게 살고 있는지, <인연 이야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통해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09년 여름

                                                                       法頂 

 

  P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