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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대 예종(睿宗, 1441~1469) 1468~1469 - 고양시 창릉 (서오릉)

나무향(그린) 2011. 1. 27. 13:31

종 목 : 사적 제198호

명 칭 : 고양 서오릉 (高陽 西五陵)

분 류 :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조선시대

수량/면적 : 1,829,792㎡

지정일 : 1970.05.26

소 재 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475-92번지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서오릉관리소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사적 제198호 - 고양 서오릉 (창릉)

 

-창릉은 서오릉의 영역 내 왕릉으로 조영된 최초의 능이다. 능침에 병풍석을 세우지는 않았으나 봉분 주위에 난간석을 두르고 있다. 석물 배치는 일반 왕릉과 같고, 양쪽 능침 아래 중간에 정자각과 홍살문을 잇는 축의 양 옆으로 수라방, 수복방 등이 대칭하여 배치되어 있다.

 

 

-제8대 예종(睿宗, 1441~1469) 1468~1469

휘는 광(胱). 세조의 둘째 아들. 세조때부터 시작한 경국대전을 완성 시켰음.

 

-제8대 예종(睿宗)과 계비(繼妃) 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 - 창릉(昌陵)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 산30 <서오릉(西五陵)소재> 사 적 : 제 197 호

 

  • 생애이야기
  • 예종은 세조와 정희왕후와의 사이에 둘째 아들로 1450년(세종 32) 1월 1일 사저에서 태어났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가 20세에 요절하였을 때, 의경세자의 아들인 원손 월산군을 세자로 책봉하는 것이 적통계승의 원칙에 맞는 것이었으나, 월산군은 불과 4세의 어린 아이였으므로 그 해 8세가 된 세조의 둘째인 해양대군(훗날 예종)이 1457년(세조 3) 11월 15일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리고 1468년 9월 7일 19세의 나이에 왕위를 이어 받았다. 성년이 되지 않아 모친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으며, 한명회, 신숙주 등의 중신이 섭정하는 원상제도를 실시하였다.
  • 그러나 병약했던 예종은 재위 1년 2개월 만에 요절하였다. 짧은 재위 기간 동안 각도의 병영에 속한 전답인 둔전을 일반 농민이 경작하게 하여 백성들을 경제적 곤궁에서 벗어나게 하는 등의 업적을 세웠다. 세조 때 입안하였던 『경국대전』을 완성하였으나, 채 반포하지 못하고 1469년 11월 28일 20세의 어린 나이로 승하하였다.
  • 일화
  • 예종은 효성이 지극했던 아들이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긍익이 지은 야사모음집『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예종이 부왕 세조가 세상을 떠난 것에 충격을 받아 건강을 해쳤다며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예종이 세자일 때 세조가 병환이 생기니 수라상을 보살피고 약을 먼저 맛보며 밤낮으로 곁을 지키며 한잠도 못 잔 지가 여러 달이 되었다. 세조가 돌아가매 슬픔이 지나쳐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건강을 해치게 되어 이 해 겨울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