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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나무향(그린) 2007. 11. 19. 09:44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마가리 : 오막살이.

고조곤히 : 고요히, 소리없이.

 

 

그럼 여기서  김영한 여사가 평생 혼을 빼았겼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해설 글을 옮겨봅니다.  시는 쓰는 것 보다 읽고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감상 해 보기로 합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1987년 해금된 백석(白石)의 작품이다.  
해금이후 그의 작품이 소개되면서 그는 한국사 최고의 시인중의 한명으로 평가 받는다.
이 시에서도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 사랑 ' 이다.
 
백석의 시에는 몇가지 눈에 띄는 점들이 있다. 
우선 색깔이다. 흰눈, 흰당나귀, 소주로 대변되는 흰색갈이다. 이로써 시인은 
이로서 시인은 다른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은 순백의 순수한 사랑을 암시한다. 
하얗게 맑고 순수하나 쓰디쓴 사랑같은 소주를 남자는 마시고, 
사랑하는 나타샤와 함께 흰색 당나귀를 타고, 
뱁새 우는 흰색 눈내린 산골로 들어가는 남녀에게서 우리는 순백으로 가득한 흰색을 본다. 

 

두 남녀는 그 둘 외는 아무도 더 이상 다른 이를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랑의 절대성이 보인다. 

시인 중심의 세계관이다. 이 점은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닌가 한다. 시인은 가난하지만,
혼자서 소주나 마시는 서글픈 상황이지만, 그러나 세계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한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눈이 나린다”

“내가 나타샤를 사랑하니 그가 오지 않을 리가 없다” 
“이깐 세상은 더러워 내가 버리는 것이다”

 

긍정적 역설이며 주도적이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을 가졌으니 눈이 내리고, 

내가 사랑하니 그녀는 '반드시' 나에게고 오고, 세상마저도 내가 차버린다. 
비록 현실이 씁쓸하여 소주를 마시지만, 현실에 진 것이 아니다. 시인의 이런 주도적인 모습은 
그러나 한국시에서 볼 수 없었던 멋진 글귀가 되었다, 특이한 '자아도취적 세계관'이라 하겠다.
다시 말하면, 
시인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하니 오늘 밤에는, 그 축복으로 하얀 눈이 내린다. 
나타샤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시인을 사랑해서 그날밤 그에게로 꼭 온다. 
그녀는 '아니 올 리 없다'. 눈은 계속 축복으로 푹푹 내린다. 흰 당나귀도 나타샤와 시인의 사랑을 축복하며 울어댄다. 

 

시인의 이 자아중심적 세계관은 남다르다. 이 시는 1930년 대 중반 '가난한' '점령당한' 조선의 시인이 쓴 시이다.

그러나 그 감정은 ‘자주적’이라 非시대적이다. 그렇게 자주적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당대 시인의 모습은 
수동적이며, 기죽은 이 시대의 여타 시들에 비하면 아주 특이한 점이다. 그 시절 백석은 고교 영어 교사였는데, 
당시로서는 상대적으로 '잘먹고, 잘사는, 인텔리'층이라서 이런 비시대덕인 '긍정적' 마인드가 형성되었을 수 있다.

 

백석의 시에서 등장한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흰눈'이나 '흰당나귀'가 아니라 '나타샤'이다. 

시는 언어를 먹고 살며, 언어의 옷을 입고 그 존재를 드러낸다. 백석의 이 시가 
사랑의 도피'를 꿈꾸는 낭만적 정서를 읊은 것이라면, 여기서 '나타샤'라는 여주인공 이름만큼 
그 낭만성을 표상하는 단어는 없다. '흰눈'은 '여기에도' 흔하고 
흰당나귀는 '느리다'. 그러나 나타샤만은 그 자체로 먼 북방의 아름다운 이국을 연상시키며,
그 美를 좇아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픈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나타샤’는 이 시를 읽는 모든이들에게 
‘동경의 혹은 이상의 여성상’을 꿈꾸게 하고 
진부한 일상에서 헤어나고픈 방랑자적 인간본성을 부추킨다. 

 

눈 내리는 밤, 소주를 마시면서 한 사내가 아름다운 여인 나타샤를 기다린다. 

이 이국 이름의 여인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활달하고, 명랑하고 천진난만한 사랑스런 여인으로 다가온다.
나타샤를 알게 된 안드레이는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확인한다. 안드레이는 나타샤를 만남으로서 
침체된 그의 인생을 '다시 시작할' 새로운 삶의 의지를 키운다. 나타샤는 구원의 여인상도 되겠다. 
백석의 이 시편 속의 남자가 기다리는 '아름다운 나타샤'는 바로 톨스토이의 나타샤와 오버랩 되면서 
'동경’을 일으키는 매우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일으킨다. 

 

백석은 원래 한국어를 애용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동아시아 쪽의 고유명사나 서양의 시인이름을 제외하고는 서양외래어사용에 부정적이었는데 
백석이 이 작품에서 사랑의 대상에 나타샤란 이름을 붙인 것은 '징후적'이다. 
백석은 하얼빈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했고, 해방후에는 러시아 문학 번역도 하였다. 
 이후 백석이 나타샤란 이름에 각별한 애정을 가질 수 있었겠다. 
밤에 내리는 하얀 눈과 흰 당나귀와 나타샤라는 북국여인의 이름은, 이 시에서 극도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백석이 남긴 이 명편(名篇)으로 인해 ‘나타샤’는 이상화의 ‘마돈나’와 함께 모든 마음이 가난한 남자들로 하여금 

낭만적 사랑의 도피행을 꿈꾸게 하는 견고한 여성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남자들의 가슴 속에 각자 품는 
이상형 여인에게 러시아 풍(風) 이름을 붙힘으로써 나타샤는 한국문학사(史)에서 낭만적 사랑의 화신(化身)이 되었다. 
이 시에서 만일 '나타샤'가 빠진다면, 혹은 '순이'같은 한국적 이름이 왔다면, 이 시의 감흥은 반이상 줄었을 것이다. 
흰당나귀는 이미지상으로는 매우 아름다운 동물이다. 그는 습성적으로 공격성이 적으며, 고급의 윤기나는 말처럼,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귀티가 나지도 않아서, 친밀한 느낌을 주는 '작은 little' 흰당나귀이다. 

당나귀는 기껏해야 하복부, 입, 눈 둘레, 다리 안쪽만이 대체로 백색이라고 한다,
그러나 당나귀는 빨리 달리지 못한다. 그러니 '멀리 도망 가기엔' 적합한 동물이 아니다. 
기껏해야 가까운 곳일 것이다. 이리하여 흰당나귀는 
이 들 사랑의 도피행각의 불완전성을 암시한다. 두 남녀가 사랑해서 들어 갈 수 있는 곳이라야 매가리 산골이다.

 

만주벌판으로나 도피해야지 산골에 있다가는 그 도피는 곧 끝장나게 마련이다. 

흰 당나귀는 프랑스의 시인 프랑시스 잠이 좋아하던 터로서 백석, 윤동주 시인이 다 같이 좋아하였다고 한다. 
사랑의 도피, 이 시의 주제는 '사랑의 도피'이다. 남자는 오늘 눈내리는 밤 흰당나귀를 타고 
뱁새우는 산골로 둘이서만 들어가는 꿈을 꾼다. 
일체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출출이(뱁새)만 외로이 우는 마가리(깊은 산골)로 숨어 들어가려는 남자의 의지가 보인다. 

 

그의 뜻에 호응하여 '나타샤는 아니올리 없다'. 그녀는 더욱 적극적이다. 남자의 귀에 대고 자신들의 사랑이 

세상에 져서 쫓겨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물 세상을 자신들이 '더러워' '버리는' 적극적 행위라고 조곤히 속삭인다. 
그때 우주는 그들의 사랑에 축복같은 눈을 내리고, 그 눈은 푹푹 내려 쌓이고, 남자와 나타샤는 사랑을 하고,  
화음한다. 그 때에는
눈처럼 새하얀 ‘흰 당나귀’도 ‘응앙응앙’ 울음으로 이 들의 순백의 사랑에 화창(和
唱)한다.

 

시의 주제의 '낙천성Optimismus'이 눈에 띈다. 시인은 사랑하는 '그녀'가 오지 않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다.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아름다운 나타샤, 나를 사랑하는 나타샤! 그녀는 그와의 도피에 

마땅히 동참할 것이다. 나타샤는 올 것이라고 확신하며,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이와같은 '낙천성'도 한국시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김영랑은 기다림의 허무를 노래한다.

김영랑은 기다림의 허무를 노래한다,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영랑에게 있어서 기다림은 이토록 ‘슬프고’ ‘허전하지만’,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의 
‘눈물’이지만. 백석은 영랑의 기다림의 허망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름다운 나의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고 
우격다짐적 낙관성을 고수하고 있다. 이 것 역시, 백석의 역사적 비시대성을 드러낸다. 
암울했던 시기에도 낙천적일 수 있었던 백석만의 정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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