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마가리 : 오막살이.
고조곤히 : 고요히, 소리없이.
그럼 여기서 김영한 여사가 평생 혼을 빼았겼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의
해설 글을 옮겨봅니다. 시는 쓰는 것 보다 읽고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감상 해 보기로 합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1987년 해금된 백석(白石)의 작품이다. | |||||||
해금이후 그의 작품이 소개되면서 그는 한국사 최고의 시인중의 한명으로 평가 받는다. | |||||||
이 시에서도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 사랑 ' 이다. | |||||||
백석의 시에는 몇가지 눈에 띄는 점들이 있다. | |||||||
우선 색깔이다. 흰눈, 흰당나귀, 소주로 대변되는 흰색갈이다. 이로써 시인은 | |||||||
이로서 시인은 다른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은 순백의 순수한 사랑을 암시한다. | |||||||
하얗게 맑고 순수하나 쓰디쓴 사랑같은 소주를 남자는 마시고, | |||||||
사랑하는 나타샤와 함께 흰색 당나귀를 타고, | |||||||
뱁새 우는 흰색 눈내린 산골로 들어가는 남녀에게서 우리는 순백으로 가득한 흰색을 본다. | |||||||
두 남녀는 그 둘 외는 아무도 더 이상 다른 이를 사랑하지 못할 것 같은 사랑의 절대성이 보인다. | |||||||
시인 중심의 세계관이다. 이 점은 이 시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닌가 한다. 시인은 가난하지만, | |||||||
혼자서 소주나 마시는 서글픈 상황이지만, 그러나 세계는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한다. | |||||||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눈이 나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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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타샤를 사랑하니 그가 오지 않을 리가 없다” | |||||||
“이깐 세상은 더러워 내가 버리는 것이다” | |||||||
긍정적 역설이며 주도적이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을 가졌으니 눈이 내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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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니 그녀는 '반드시' 나에게고 오고, 세상마저도 내가 차버린다. | |||||||
비록 현실이 씁쓸하여 소주를 마시지만, 현실에 진 것이 아니다. 시인의 이런 주도적인 모습은 | |||||||
그러나 한국시에서 볼 수 없었던 멋진 글귀가 되었다, 특이한 '자아도취적 세계관'이라 하겠다. | |||||||
다시 말하면, | |||||||
시인이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하니 오늘 밤에는, 그 축복으로 하얀 눈이 내린다. | |||||||
나타샤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시인을 사랑해서 그날밤 그에게로 꼭 온다. | |||||||
그녀는 '아니 올 리 없다'. 눈은 계속 축복으로 푹푹 내린다. 흰 당나귀도 나타샤와 시인의 사랑을 축복하며 울어댄다. | |||||||
시인의 이 자아중심적 세계관은 남다르다. 이 시는 1930년 대 중반 '가난한' '점령당한' 조선의 시인이 쓴 시이다. | |||||||
그러나 그 감정은 ‘자주적’이라 非시대적이다. 그렇게 자주적으로 세계를 해석하는 당대 시인의 모습은 | |||||||
수동적이며, 기죽은 이 시대의 여타 시들에 비하면 아주 특이한 점이다. 그 시절 백석은 고교 영어 교사였는데, | |||||||
당시로서는 상대적으로 '잘먹고, 잘사는, 인텔리'층이라서 이런 비시대덕인 '긍정적' 마인드가 형성되었을 수 있다. | |||||||
백석의 시에서 등장한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흰눈'이나 '흰당나귀'가 아니라 '나타샤'이다. | |||||||
시는 언어를 먹고 살며, 언어의 옷을 입고 그 존재를 드러낸다. 백석의 이 시가 | |||||||
사랑의 도피'를 꿈꾸는 낭만적 정서를 읊은 것이라면, 여기서 '나타샤'라는 여주인공 이름만큼 | |||||||
그 낭만성을 표상하는 단어는 없다. '흰눈'은 '여기에도' 흔하고 | |||||||
흰당나귀는 '느리다'. 그러나 나타샤만은 그 자체로 먼 북방의 아름다운 이국을 연상시키며, | |||||||
그 美를 좇아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픈 환상을 불러 일으킨다. ‘나타샤’는 이 시를 읽는 모든이들에게 | |||||||
‘동경의 혹은 이상의 여성상’을 꿈꾸게 하고 | |||||||
진부한 일상에서 헤어나고픈 방랑자적 인간본성을 부추킨다. | |||||||
눈 내리는 밤, 소주를 마시면서 한 사내가 아름다운 여인 나타샤를 기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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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국 이름의 여인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 |||||||
활달하고, 명랑하고 천진난만한 사랑스런 여인으로 다가온다. | |||||||
나타샤를 알게 된 안드레이는 | |||||||
“내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확인한다. 안드레이는 나타샤를 만남으로서 | |||||||
침체된 그의 인생을 '다시 시작할' 새로운 삶의 의지를 키운다. 나타샤는 구원의 여인상도 되겠다. | |||||||
백석의 이 시편 속의 남자가 기다리는 '아름다운 나타샤'는 바로 톨스토이의 나타샤와 오버랩 되면서 | |||||||
'동경’을 일으키는 매우 사랑스러운 이미지를 일으킨다. | |||||||
백석은 원래 한국어를 애용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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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동아시아 쪽의 고유명사나 서양의 시인이름을 제외하고는 서양외래어사용에 부정적이었는데 | |||||||
백석이 이 작품에서 사랑의 대상에 나타샤란 이름을 붙인 것은 '징후적'이다. | |||||||
백석은 하얼빈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했고, 해방후에는 러시아 문학 번역도 하였다. | |||||||
이후 백석이 나타샤란 이름에 각별한 애정을 가질 수 있었겠다. | |||||||
밤에 내리는 하얀 눈과 흰 당나귀와 나타샤라는 북국여인의 이름은, 이 시에서 극도로 | |||||||
환상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 |||||||
백석이 남긴 이 명편(名篇)으로 인해 ‘나타샤’는 이상화의 ‘마돈나’와 함께 모든 마음이 가난한 남자들로 하여금 | |||||||
낭만적 사랑의 도피행을 꿈꾸게 하는 견고한 여성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남자들의 가슴 속에 각자 품는 | |||||||
이상형 여인에게 러시아 풍(風) 이름을 붙힘으로써 나타샤는 한국문학사(史)에서 낭만적 사랑의 화신(化身)이 되었다. | |||||||
이 시에서 만일 '나타샤'가 빠진다면, 혹은 '순이'같은 한국적 이름이 왔다면, 이 시의 감흥은 반이상 줄었을 것이다. | |||||||
흰당나귀는 이미지상으로는 매우 아름다운 동물이다. 그는 습성적으로 공격성이 적으며, 고급의 윤기나는 말처럼, | |||||||
너무 크지도 않고, 너무 귀티가 나지도 않아서, 친밀한 느낌을 주는 '작은 little' 흰당나귀이다. | |||||||
당나귀는 기껏해야 하복부, 입, 눈 둘레, 다리 안쪽만이 대체로 백색이라고 한다, | |||||||
그러나 당나귀는 빨리 달리지 못한다. 그러니 '멀리 도망 가기엔' 적합한 동물이 아니다. | |||||||
기껏해야 가까운 곳일 것이다. 이리하여 흰당나귀는 | |||||||
이 들 사랑의 도피행각의 불완전성을 암시한다. 두 남녀가 사랑해서 들어 갈 수 있는 곳이라야 매가리 산골이다. | |||||||
만주벌판으로나 도피해야지 산골에 있다가는 그 도피는 곧 끝장나게 마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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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당나귀는 프랑스의 시인 프랑시스 잠이 좋아하던 터로서 백석, 윤동주 시인이 다 같이 좋아하였다고 한다. | |||||||
사랑의 도피, 이 시의 주제는 '사랑의 도피'이다. 남자는 오늘 눈내리는 밤 흰당나귀를 타고 | |||||||
뱁새우는 산골로 둘이서만 들어가는 꿈을 꾼다. | |||||||
일체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출출이(뱁새)만 외로이 우는 마가리(깊은 산골)로 숨어 들어가려는 남자의 의지가 보인다. | |||||||
그의 뜻에 호응하여 '나타샤는 아니올리 없다'. 그녀는 더욱 적극적이다. 남자의 귀에 대고 자신들의 사랑이 | |||||||
세상에 져서 쫓겨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속물 세상을 자신들이 '더러워' '버리는' 적극적 행위라고 조곤히 속삭인다. | |||||||
그때 우주는 그들의 사랑에 축복같은 눈을 내리고, 그 눈은 푹푹 내려 쌓이고, 남자와 나타샤는 사랑을 하고, | |||||||
화음한다. 그 때에는 | |||||||
눈처럼 새하얀 ‘흰 당나귀’도 ‘응앙응앙’ 울음으로 이 들의 순백의 사랑에 화창(和 | |||||||
唱)한다. | |||||||
시의 주제의 '낙천성Optimismus'이 눈에 띈다. 시인은 사랑하는 '그녀'가 오지 않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한다. | |||||||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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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아름다운 나타샤, 나를 사랑하는 나타샤! 그녀는 그와의 도피에 | |||||||
마땅히 동참할 것이다. 나타샤는 올 것이라고 확신하며,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 |||||||
이와같은 '낙천성'도 한국시에서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김영랑은 기다림의 허무를 노래한다. | |||||||
김영랑은 기다림의 허무를 노래한다,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 |||||||
영랑에게 있어서 기다림은 이토록 ‘슬프고’ ‘허전하지만’, '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의 | |||||||
‘눈물’이지만. 백석은 영랑의 기다림의 허망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름다운 나의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고 | |||||||
우격다짐적 낙관성을 고수하고 있다. 이 것 역시, 백석의 역사적 비시대성을 드러낸다. | |||||||
암울했던 시기에도 낙천적일 수 있었던 백석만의 정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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