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산책 ▒/시인 백석

늙은 갈대의 독백 / 백석

나무향(그린) 2007. 11. 16. 09:59

늙은 갈대의 독백 / 백석

 

해가 진다 갈새는 얼마 아니하야 잠이 든다

물닭도 쉬이 어느 낯설은 논드렁에서 돌아온다

바람이 마을을 오면 그때 우리는 섧게 늙음의 이야기를 편다

 

보름달이면 갈거이와 함께 이 언덕에서 달보기를 한다

강물과 같이 세월의 노래를 부른다

새우들이 마른 잎새에 올라 앉느 이 때가 나는 좋다

 

어느 처녀가 내 잎을 따 갈부던 결었노

어느 동자가 내 잎닢 따 갈나발을 불었노

어느 기러기 내 순한 대를 입에다 물고 갔노

 

아, 어느 태공망이 내 젊음을 낚아 갔노

이 몸의 매딥매딥

잃어진 사랑의 허물 자국

별 많은 어느 밤 강을 날여간 강다릿배의 갈대 피리

비오는 어느 아침 나룻배 나린 길손의 갈대 지팽이

모두 내 사랑이었다

 

해오라비조는 곁에서

물뱀의 새끼를 업고 나는 꿈을 꾸었다

벼름질로 돌아오는 낫이 나를 다리려 왔다

달구지 타고 산골로 삿자리의 벼슬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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