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바다 / 이형권
위로가 필요할 때 강릉바다에 간다.
대관령을 넘어가면 친구처럼 반겨주는 바다
무너지고 흩어졌다 다시 달려오는 물보라는
한때 우리가 부르던 청춘의 송가와 같다.
서러운 마음을 보듬어주는 해변으로 가면
바람은 먼 데서 달려온 소식처럼 옷깃을 여미고
옥색바다 물빛은 햇살에 뒤척이며
한 장의 푸른 수건처럼 펄럭인다,
사랑의 맹세가 모래알처럼 흡쓸려 간 곳
어선의 부표처럼 쓸쓸하게 흘러가면
새로운 시간이 열리듯 붉은 벼랑길이다.
그 길을 따라가면 이름마저 후미진 곳 심곡항
6.25 난리도 모르고 살았다는 이 마을에는
신라적 한 노인이 젊은 부인의 미색에 반해
벼랑 끝에 핀 꽃을 꺾어 바쳤다는 전설이 있다.
단오날이면 동해 만신들이 그 노래를 부르는데
노랫말 속에 스민 마음이
보름날 달빛 쏟아지는 바다처럼 농염하다.
숨길 수 없는 사랑은 파도처럼 몸을 푸는데
그 배후에는 강릉이 숨겨둔 슬픈 바다가 있다.
바다에 의지해 살아온 사람들의 칠성판과 같은 곳
해변에는 오래된 무덤들이 즐비하다.
백골이 되어도 바다 곁에 누워 있는 사람들
소멸되지 않는 그리움이 그곳으로 이끄는데
이별해야 할 모든 것을 그리워하기 좋은 곳
비로소 강릉바다의 끄트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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