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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新婦 - 서정주

나무향(그린) 2017. 10. 21. 07:10

신부新婦 - 서정주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읍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읍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읍니다.

 

그러고 나서 四十年인가 五十年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읍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읍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읍니다......................... 미당 서정주 '질마재로 돌아가다' 중에서.........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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