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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 유선철

나무향(그린) 2016. 3. 14. 20:09

춤 (유선철:상운)

 

허공의

그 끝에서

울컥,

네가 밀려와서

 

치자꽃

향기 같은

귀엣말

두고 갈 때

 

가녀린

목덜미 위로

떨어지는

꽃잎

 

 

 

 

 

△5호선  아차산역~

 

 

 

 

'바람재들꽃' 3월 꽃편지

(메일 편지 옮김)

 

 

2007년부터 3년간 처음으로 시조를 배웠습니다.

우리나라 시조단의 살아있는 전설, 백수 정완영 선생님으로부터 시조를 배우는 것은 큰 기쁨이며 보람이었습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셨지만 선생님의 시조는 알기 쉬운 언어로 한국적인 정서를 고원한 경지까지 끌어올리는 마력이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던 ‘조국’은 선생님의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교과서에서 만나던 분을 직접 모시고 공부하게 되니 얼마나 좋았던지요.

선생님은 시조 이야기를 하실 때 체온이 5℃ 올라간다고 하십니다.

실제로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열정이 대단하셨습니다.

그 때 연세가 89세,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2010년부터 이교상 시인을 중심으로 공부모임이 만들어졌고 매주 합평회를 하였습니다.

각자가 준비해온 시조를 다른 사람들이 평가하고 비판하는 자리였습니다.

칭찬을 받는 날도 있었지만 깨지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습작을 하던 중, 2012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에 당선되었습니다.

지방지여서 다소 섭섭했지만 어쨌든 시인이 되었습니다.

당선 소감에 이렇게 썼습니다.

 

“시조의 강 근처를 기웃거리다가 그만 발목이 빠져버렸습니다.

처음엔 자꾸 쓰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광맥을 찾아 헤매는 일이고 금쪽같은 말을 캐내는 일이었습니다.

읽고 고치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다 보면 멀미가 났습니다.

소질도 없으면서 길을 잘못 든 거라고 손사래를 치면서 도망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멀리 가지 못하고 슬그머니 돌아오기를 몇 번, 어느새 시조의 강물은 허리께에 차올라 있었습니다.”

 

 

2013년에 천강문학상에 응모했는데 운이 좋았던지 시조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

천강문학상은 경남 의령군에서 곽재우 선생님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상입니다.

시를 비롯해 시조와 소설, 아동문학(동시, 단편동화), 수필 등 5개 부문에 대해 공모하며,

기성문인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응모가 가능한 문학상입니다.

당선 소감의 일부입니다.

 

“ ‘따뜻한 글쓰기’의 전제는 ‘나부터 따뜻해지는 것’ 아니던가요.

내가 먼저 깨어있어야 하고, 내 몸에 뜨거운 피가 돌아야, 다른 사람의 가슴을 덥힐 수 있겠지요.

이건 마치 선구자의 역할과도 같습니다.

문득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너무 많은 글, 너무 많은 시가 쏟아지는데 굳이 제가 써야 하는 이유도 없는 듯 했습니다.”

 

매달 제게 배달되는 시조집과 시조 잡지들이 상당합니다.

다 읽어내지도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시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쓰는 시도 공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낯설게 하기’를 넘어서 ‘골치 아픈’ 시를 만났을 때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직지사 승가대학원에서 청강을 했습니다.

일주일에 네 번씩 수업을 받았습니다.

예습과 복습의 분량이 적지 않습니다.

그 동안 시조를 거의 쓰지 못했습니다.

손을 놓고 있으니 한 줄 쓰기도 어려웠습니다.

올해에도 공부는 계속되는데 고민입니다.

저에겐 늘 시조에 대한 아쉬움과 목마름이 있습니다.

매진하지도 못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합니다.

누가 제게 시인인가? 하고 물으면 움찔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 대답은 분명합니다.

“시인이고 싶습니다.”

 

작년에 서울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에 게시할 시조를 공모한다는 연락을 받고

전에 써두었던 ‘춤’이라는 단시조를 보냈습니다.

행을 줄이라고 해서 원래보다 많이 줄였습니다.

다행히 채택이 되어 2호선 봉천역, 5호선 아차산역, 8호선 복정역에 게시되었다고 합니다.

아내가 서울 가는 길에 함께 가서 복정역에 게시된 것만 확인했습니다.

향기로운 언어로 서울 한 모퉁이를 밝히고 있다면 이 또한 즐거운 일이겠으나

오가는 승객들에게 공연히 피로감만 더해준다면 이 일을 어찌 할까요.

 

다시 3월입니다.

새싹들이 양손에 햇살을 받아들고 예쁘게 하품을 합니다.

머지않아 꽃들은 다투어 피고 신록은 그 푸른 머리채를 마구 흔들어대겠지요.

새봄을 정겹게 맞으시기 바랍니다.

 

 

  허공의

그 끝에서

울컥,

네가 밀려와서

  치자꽃

향기 같은

귀엣말

두고 갈 때

  가녀린

목덜미 위로

떨어지는

꽃잎

 

2016년 3월 초하루 상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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