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충만 - (30) 출가에는 공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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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동안 음산하고 음울한 날씨로 인해 심기가 편치 않았다. 비라도 내리든지 아니면 활짝 갰으면 좋을 텐데, 한 주일이 넘도록 잔득 찌푸린 날씨였다.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날씨가 나는 아주 질색이다.
날씨뿐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성격이 분명하고 쾌활한 사람이 좋지 침울하고 어둡고 내숭더는 그런 사람하고는 잠시라도 함께 있고 싶지 않다. 음울하고 어두운 사람과 가까이하면 내 자신도 음울하고 어둡게 가라앚기 때문이다.
특히, 독신 수행자의 경우는 성격이 활달하고 밝고 분명해야 한다. 어둡고 침울한 사람은 건전한 수도생활을 하기가 어려울분 아니라 여럿이 어울려야 할 공동생활에 갈등과 불화를 가져오는 요인이 되기 쉽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런 성격의 소유자들은 대개 곁과 속이 다르고 이간질 잘하고 거짓말 잘하고 정서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기가 십상이다.
밤중에 출가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을 나는 열이면 열 하나같이 다 문전에서 쫓아버린다. 대낮에 당당하게 찾아 나설 일이지 하필이면 어둔 밤중에 새 출발을 하겠다니 말이 되는가. 며칠 전에도 밤 아홉 시 취침시간이 넘어 출가하겠다고 찾아온 사람을 물을 것도 없이 당장 쫓아버렸다.
밤에 다니는 사람들은 출가자가 될 수 없다. 밝고 당당한 낮에 새 삶의 길을 찾아야 한다. 어둔 밤에는 자신이 없거나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이 나다니는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가 수행자로서 부적격하다는 말이다. 물론 밤 늦게까지 일터에서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성실한 직장인은 여기에 행당하지 않는다. 대개 어느 절에서나 말성부리는 사람들은 밤늦게 다니기를 좋아하는 부류들이다.
오늘은 모처럼 날씨가 맑게 갰다. 호박 구덩이를 두 군데 파서 두엄을 세 삼태기씩 묻어주었다. 날씨가 더 풀리면 씨를 심기 위해서다.
달력을 보니 내일이 부처님 출가일이다. 부처님의 출가를 두고 생각하면 나는 심히 부끄럽다. 현재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런 삶의 모습을 과연 출가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해서다.
출가란 온갖 집착의 집에서 벗어남이요, 세속적인 인습과 타성의 늪에서 뛰쳐나오는 일이다. 부처님(싯다르타 태자)의 출가를 가리켜 '유성 출가'라고도 하는데 그것은 카필라 정반왕의 궁성을 넘어 출가한 데서 온 말이다. 그러나 이 성城은 단순히 유형적인 성이 아니라 인정과 집착의 성이고 인습과 타성의 성이다.
스물아홉에 집을 나올 무렵의 그에게는 아름답고 슬기로운 아내와 어린 자식이 있었다. 그리고 조그만 왕국이지만 그에게는 왕권이 보장되어 있었다. 이 같은 환경을 박차고 출가한다는 것은 말이 쉽지 생나무 가지를 짲고 뼈를 깍는 아픔이 따랐을 것이다.
우리 같은 처지라면 그토록 기릴 것 없이 갖추어진 여건을 헌 신짝처럼 버리고 출가할 수 있었을까. 예쁜 아내와 귀여운 아들, 그리고 세속적인 권력과 부를 어떻게 미련 없이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부처님의 출가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위대한 내던짐'이라고 한다. 크게 버리지 않고는 크게 얻을 수 없다는 사연이 여기에 있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논리다.
2
<유마경>은 대승 경전 중에서도 가장 초기에 결집된 경전이다.(188년에 첫 한역漢譯이 이루어졌다). 초기 불교의 출가주의적인 경향에 대해서 제동을 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런 경전이다. 법(진리) 앞에는 출가와 재가를 가릴 것 없이 오로지 바른 견해가 있을 뿐임을 보여주고 있는, 지극히 극적인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유마경>><제자품>에서 유마 거시는 다음과 같은 사자후를 토하고 있다.
"출가의 공덕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왜냐하면, 아무런 이익과 공덕이 없는 것이 출가이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일이라면 이익과 공덕이 있을지 모르지만, 출가란 이런 현상계를 초월한 행위이다. 현상계를 초월한 행위에는 그 어떤 이익도 공덕도 없다."
불심 천지의 소리를 듣던 양나라의 무제가 달마 스님을 찾아가 묻는다.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절과 탑을 세우고 불상을 조성하고 스님들을 득도시켯습니다. 이런 저에게 어떤 공덕이 있을까요?"
이 물음에 대해서 달마 스님은 "아무 공덕도 없습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이 말뜻을 양무제는 끝내 알아듣지 못한다. 그는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현상계에만 집착해 있었기 때문에, 현상계 밖의 소식은 몰랐던 것이다.
'출가에는 아무 이익도 공덕도 없다.'는 이 말이야말로, 진실한 출가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흔히 하는 소리로, '일자출가一子出家에 구족생천九族生天'이란 말이 있다. 한 자식이 출가하여 제대로 수행자 노릇을 잘하면 저 고조할아버지로부터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천상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귀에 솔깃한 소리 같다. 내가 갓 중이 되었을 때 만나는 노스님들마다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때는 듣기 좋은 말로만 알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섬뜩해진다.
한 자식이 중 노릇 잘하면 그 집안의 일가친척까지도 영광이겠지만, 시주의 밥과 옷이나 축내면서 나태와 속심으로 가득 차 사이비 중 노릇을 하고 있다면 구족이 함께 지옥에 떨어진다는 이 말이 어찌 무서운 말이 아닌가.
다시<<유마경>>의 말씀.
"출가란 눈에 보이는 형체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쿵저러쿵 하는 온갖 견해를 초월한 경지다. 그것은 바로 열반의 길이다. 이것은 현자가 찬탄하는 길이고 성인이 실천하는 길이다."
출가 수행승을 다른 말로 하면 출격出格 장부라고도 한다. 틀에서 벗어난 진짜 사나이란 뜻이다. 진짜 사나이가 되려면 시시 콜콜한 세속적인 잡사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해야할 정진은 하지 않고 사나이답지 못하게 시기하고 질투하고 이간질하고 고자질이아 일삼으면서 귀중한 시간을 소모한다면, 모처럼 출가 했다고 한들 무슨 이익과 덕이 되겠는가.
승가란 뜻이 '화합된 모임'임을 상기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살생이나 도둑질보다 더 큰 죄는 대중의 화합을 깨뜨리는 일이다. 석 달 동안의 안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살림 중에 대중에게 불안을 안겨주고 떠나는 폐습이 횡행하고 있는 요즘, 말 그대로 아무 공덕도 없는 출가가 되고 말지 않겠는가.
온갖 불안과 번뇌와 망상의 불꽃이 꺼져버린 상태를 열반이라 한다. 그런 열반에 이르는 길이 진정한 출가가 될 수 있다.
3
유마 거사는 다시 말한다.
"출가는 온갖 악마를 항복시키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의 눈을 밝게 뜬다. 거짓된 이름에 집착하지 않고, 욕망의 늪에서 뛰쳐나와 때묻지 않는다. 나와 내 것에 집착하지 않고, 인연의 밧줄에도 묶이지 않는다. 마음의 동요가 없이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리고 남의 뜻을 존중하면서, 선정 속에서 허물을 짓지 않는 것이 진정한 출가다."
출가 수행자의 눈은 안으로 거두어들여야 한다. 수행자의 눈이 안으로 향하지 않고 밖으로 팔릴 때 그것은 세속의 눈과 다를 게 없다. 세속의 눈이란 감각과 쾌락의 눈이다. 실상을 망각하고 허상에 사로잡힌 맹목이다.
수행자의 눈이 안으로 향함으로서 허상 뒤에 우뚝 선 실상을 가려볼 수 있다.
온갖 악마를 항복시키는 일이 출가라고 했다. 비구의 뜻도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악마란 외부의 세계에서 나를 해코지하는 그런 존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 마음속에서 분별과 망상으로 갈등하면서 안정되지 못한 정신상태가 곧 악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거짓된 이름에 얼마나 연연하고 있는가. 출가 수행자에게 가장 강한 욕망은 명예욕이라고 한다. 말장한 수행자가 한번 이 명예욕에 사로잡히면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세속적인 속물이 되고 있다.
수행자도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기능에 따라 크고 작은 직책이 주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직책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소임(일시적으로 맡긴 직책)이지 특권은 될 수 없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이 소인을 마치 자신의 특권처럼 착각하여 대중의 뜻을 무시하고 세속적인 권위로써 군림하려는 사례를 흔히 목격하게 된다. '중 벼슬 닭 벼슬만도 못하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그 어떤 소임을 볼지라도 자기 분수를 알고 마음의 동요가 없이 그 마음을 제대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남의 뜻을 존중하면서, 항상 선정 속에서 허물을 짓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한 출가라고 했다.
'나와 내 것에 집착하지 않고, 인연의 밧줄에도 묶이지 않는다.' 그래야 틀에서 벗어난 대장부, 즉 자유인이 될 수 있다. 출가가 세속적인 도피가 아니고 보다 높은 가치의 추구라면, 비본질적인 늪에서 거듭거듭 벗어나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부처님 출가 기념일을 맞아 너나없이 오늘 우리들 자신 출가의 모습을 한번 되돌아보자는 뜻에서 함께 경전 산책에 나선 것이다. 1988
-텅빈충만 - (30) 출가에는 공덕이 없다...........P20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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