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사적 제200호
명 칭 : 고양 서삼릉 (高陽 西三陵) 회묘 분 류 :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조선시대 수량/면적 : 248,763㎡ 지정일 : 1970.05.26 소 재 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38-4번지 외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 : 문화재청 관리자 : 서오릉관리소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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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제200호 - 회묘(고양 서삼릉). 140913.
-조선 제10대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묘다.
원래 회묘는 서울시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었던 것을 1969년 경희대학교 공사 때 서삼릉 경내로 이장되었다 한다.
회묘는 묘(墓)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왕릉 못지 않은 모습이다. 묘의 형식에서는 볼 수 없는 난간석이나 무인석 등. 회묘는 연산군 시절에 폐비 윤씨가 제헌왕후로 복위되면서 그녀의 능 또한 회릉으로 격상되어 능의 석물도 왕릉의 형식에 따라 조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후에 중종반정으로 인해 연산군이 폐위되자 회릉은 다시 회묘로 격하되어 버렸다 한다. 회묘로 격하되었지만 석물 만큼은 당시 회릉의 모습을 그대로다.
이유인 즉, 옛 조상들은 '무덤을 건드리면 화를 부른다'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한다.
고양 서삼릉의 '왕자 공주 묘'를 지나, 수 많은'후궁 묘' 뒤편에 혼자 묻혀 있다.
=양반집안의 딸인 폐비 윤씨(1445~1482)는 집안이 궁핍해지자 궁에 들어왔다 한다. 성종보다 열두 살 연상이지만 빼어난 미모로 1473년(성종 4) 숙의에 봉해졌고, 원비 공혜왕후가 승하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해 연산군을 낳았으나 심한 투기와 모함으로 폐위되어 사약을 받았다.
연산군의 즉위 후를 생각한 성종은 1489년 묘비조차 없던 윤씨의 묘에 ‘윤씨지묘’라는 묘비를 세우도록 허락했다.성종이 1494년 승하하고 그 국장기간에 연산군은 자신이 폐비 윤씨의 자식임을 알게 되었다.
* 회묘는 고양 서삼릉의 비공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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