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산책 ▒/혜환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22] 쉽게 씌여진 시

나무향(그린) 2013. 11. 22. 04:25

쉽게 씌여진 시 -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ㅡ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후의 악수.  .....................................P3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