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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향토유적 제 38호 -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묘 & 사당

나무향(그린) 2012. 2. 15. 0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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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에서

 ▲우측에서


 

 

  ▲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묘 ▼ 바우덕이 사당

 

 

 

                             △ 안성 향토유적 제 38호 -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묘 - 경기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 산2. 111226.

 

-바우덕이는 안성 청룡사 옆 골짜기인 불당골에서 지냈다고 한다. 혹은 청룡사에서 숙식했다 는 주장도 있다. 여하튼 "안성 청룡 바우덕이…"로 시작하는 바우덕이 속요에도 나와 있지 만 바우덕이와 안성 청룡사는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 당시 전국의 사찰들은 재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청룡사에서는 사당패를 보호하는 역 할을 하였고 바우덕이패는 공연을 하면서 먹거리며 현금을 조달해 주었기 때문에 자연스럽 게 상호 공생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바우덕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안성 청룡사 를 꼭 찾아보아야 한다. 청룡사는 큰 사찰은 아니지만 매우 아름다운 대웅전으로 유명하다.

 

* 바우덕이 연보 

 

1848. - 안성에서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출생

1853. - 안성 서운면 청룡사 안성남사당 입단 (당시 5세) - 선소리, 줄타기, 풍물, 무동, 새미의 모든 남사당 공연예술 학습

1863. - 안성남사당 꼭두쇠 추대 (당시 15세) 남사당에서 최초이자 최후의 여성 꼭두쇠로 활동 시작 (당시 꼭두쇠 였던 윤치덕의 사망 후 바우덕이가 꼭두쇠로 추대됨) 1865. - 고종 2년 경복궁 중건에 안성남사당패를 이끌고 출연 최고의 영예인 정3품 당상관 벼슬 상당의 옥관자 수상 남사당을 전국 예술집단의 최고봉으로 끌어 올림 1865.∼1870. - 안성남사당패가 “바우덕이”로 통칭됨 전국을 다니며 공연활동을 펼침 → 대한민국 연예문화 탄생 → 최초의 연예인 : 남사당 바우덕이

1870. - 폐병으로 사망 (남사당 단원의 간호를 받다가 사망함) 남사당 단원들이 바우덕이를 청룡리 골짜기에 안치하고 장례를 지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