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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송광사 - 전남 순천 조계산

나무향(그린) 2011. 6. 25. 18:44

 

 

 

 

 

 

          ▲ 조계문=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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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전 

▲ 박물관 

▲ 불일문 

 ▲ 종고루

▲ 하마비 

                                                                 △ 송광사 -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

 

-송광사는 『승평속지<昇平續誌>』에 의하면 신라말에 혜린선사<惠璘禪師>가 창건하여 길상사<吉祥寺>라 하였는데 건물은 겨우 1백여 칸에 불과했으며 승려수는 30∼40명 정도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혜린선사가 어떤 스님인지 그 행적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확실한 송광사의 초창 내용은 알 수 없다.

 

다만 고려시대에 보조국사의 정혜사<定慧社>가 있기 이전에 소규모로 사원이 경영되고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후에 길상사를 중창한 스님은 고려 인종(1123∼1146년)때 활약했던 석조대사<釋照大師>이다. 개창 이후로 오랜 세월이 지난 후이기 때문에 집이 기울고 단청도 퇴락한 길상사를 석조대사는 대찰의 원을 세우고 사람을 소집하고 목재를 준비하였으나 이같은 대역사를 완공하지 못하고 입멸하였다.

 

이러한 폐허의 길상사가 새로운 규모의 대찰로 발전하게 된 것은 보조국사<普照國師>가 그의 도반<徒伴>을 이끌고 이곳에 정혜사를 옮겨온 뒤부터이다. 보조국사 지눌(<知訥>·1158∼1210년)은 당시 속세의 명예나 이익만을 추구하는 불교계를 떠나 남쪽인 이곳에 정착하여 새로운 혁신의 바람인 정혜결사<淨慧結社>를 일으켰다. 특히 지눌은 희종(1205∼1211년)의 막강한 후원을 입고 있었는데,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친분이 두터운 희종은 그가 즉위하자마자 「길상사」란 이름을 「수선사<修禪寺>」로 고치도록 친히 글을 써서 제방<題榜>을 내렸다. 그러니까 정혜사<定慧社>에서 수선사<修禪寺>로 바뀐 것이다.

 

그 뒤 송광사는 고려말까지 약 200여 년에 걸쳐 16국사<國師>를 배출함으로써 우리나라 삼보사찰중 승보사찰<僧寶寺刹>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안고 있는 송광사는 조선조에 들어와 정유재란의 전란을 겪고 난 후 응선, 희장, 부휴 등에 의해 일부가 복건<復建> 되었으나 다시 헌종 8년(1842) 대화재로 거의 불탄 것을 기봉·용운 등 두 대사의 주관으로 14년에 걸쳐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게 된 것이다.

 

현재 사내에는 50여 동<棟>의 건물 외에 국보 3점과 보물 13점, 지방문화재 10여 점 등 많은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1980년대 초부터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특히 현 대웅전은 亞자형 건물로서 국내 최대의 법당으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1998년에는 조계산 송광사, 선암사 일원이 국가문화재인 사적 및 명승(제7호)으로 지정된 바 있다.

 

※ 송광사 곱향나무 바로가기 =>[천연기념물 88호] 송광사 곱향나무쌍향수(순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