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산책 ▒/이해인수녀님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 화가 하정민

나무향(그린) 2009. 2. 23. 15:03

 

                                                                                            △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 - 꽃 그림 = 하정민

· 1964 서울 출생

· 1987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 1993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 개인전 Solo Exhibition -

· 1989 ~ 2003 개인전 23회(서울, 독일, 중국, 프랑스 등)

- 수상 Receive a Prize -

· 1995 제14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국립현대미술관)
· 1996 제1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국립현대미술관)
          제15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국립현대미술관)
· 2000 제8회 한국미술정예작가상(미술시대 주관)
· 2001 제7회 마니프 서울국제아트페어 우수상
          제15회 대한민국회화대전 대상(문화관광부장관상)
          2001 미술세계 작가상

- 주요 단체전 Selected Group Exhibition -

· 1990 젊은 모색 90(국립현대미술관)
          동방의 빛∥(우크라이나 시립미술관, 러시아)
· 1991 '91 중.한 현대수묵화전(성립미술관, 대만)
          제17회 동경전(동경도 미술관, 일본)
· 1992 대한민국 청년작가 파리전(에스깔리아 갤러리, 프랑스)
· 1993 한.중 미술협회 교류전(예술의 전당, 서울)
· 1994 22인의 회화와 조각전(갤러리 이콘)
· 1995 '95 동아시아 현대작가전(후나바시 갤러리, 일본)
· 1996 제32회 아시아 현대미술제(동경도 미술관, 일본)
          새로운 상상력에 대한 탐색(홍콩문화센터, 홍콩)
· 1997 유럽.중국 미술제전(사천성미술관, 중국)
          제8회 방글라데시 비엔날레(실파카라 아카데미, 데카)
· 1998 고려대학교 교수미전(고려대학교 교우회관)
· 1999 회화의 회복-한국미술 21세기의 주역(성곡미술관)
          NICAF '99(동경국제아트포럼, 일본)
· 1999~2002 움직이는 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초대)
· 2000 제10회 청담미술제(갤러리 아미)
. 2002 찾아가는 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 초대)

 


- 현재 Present -
· 홍익대학교 겸임교수, 한남대 출강
· 서울미술협회 이사
· 국가보훈문화예술협회 한국화분과위원장 및 이사
· 용산미술협회 수석부회장

 

E-mail : master@hajeongmin.com

 

하정민의 작업실에서=>http://www.hajeongmin.com/about.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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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꿈꾸는가,행복하라!

한국화가 하정민

한국화가라는 수식어만으로는 부족하다.대학교수로,
일러스트레이터로,전시 기획자로,재능넘치는 그의기질은
다방면에 촉수를 뻗치고 있었다. 그는 요즘 시대가 원하는
인간형의 전형이다. 에디터/박진희

``아침에 기상,전차를 타고 출근,사무실 혹은 공장에서 보내는 4시간, 식사,전차,4시간의 노동,식사,수면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 화 수 목 금 토,이 행로는 대개의 경우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다만 어느 날 문득, `왜?` 라는 의문이 솟아 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시작된다`라는 말은 중요하다.권태는 기계적인 생활의 여러 행동들이 끝날 때 느껴지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의식이 활동을 개시한다`는 것을 뜻한다.``
                                  알뤼르 까뮈,<시지프스의 신화> 중에서

자유는 현대인의 영원한 노스텔지어다. 비록 지금은 네모나게 각이 진 틀 속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지도 모르나, 가슴 한 쪽으로는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자유, 그 사전적 의미는 ``自由,남에게 구속을 받거나 무엇에 얽메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해동하는 일,또는 그러한 상태.``여기서 `자기 마음대로` 라는 구절이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일단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려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하며,설령 내 마음가는곳을 알았다 해도 여러 `따위`,혹은 `때문`들이 발목을 붙잡는다.그렇게 하릴없이 발복을 붙잡히면,자유는 아련한 꿈으로, 질겅대며 씹어대는 술안주로, 늦은 밤 상념의 테마로만 남는다. 여기까지,여기까지 권태에 나른해진 에디터의 넋두리다. 그런데,그로기 상태였던 에디터의 촉수를 건드려 `의식이 활동을 개시하도록 한 복선이 깔렸으니,한국화가 하정민과의 만남이다.
``하고 있는 일들이 너무 복잡하지 않냐구요? 천만에,간단해요.전 지금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예요. 어떤 구애도 받지 않고 제 인생의 플랜을 세우고,제 마음이 시키는 걸 해요. 말하자면 자유인인 셈이죠.``
부드러운 말투에서 왠지 모를 힘이 느껴진다.온화한 모습 안에 숨겨진 면도날 같은 날카로운 감성을 감지한다.자유롭자고 소리치는 것이 아닌, 나는 이러이러한 자유를 찾아가고 있는데 너는 네 안의 자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하고 말하는 느낌.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국미술의 차세대 주자

하정민이 뭘 하는 사람인지 딱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한국화가,출판 일러스트레이터,전시 기획자와 대학교수 등 그가 가지고 있는 타이틀이 한두 개가 아니어서 그렇다.명함을 요구하는 에디터에게 하정민 자신조차 갖고 있는 명함만 십여 개라며 어떤 걸 건네야 할 지 곤혹스러워 한다. 그래도 굳이 대표직업을 꼽으라면 역시, 화가다.그냥 화가도 아니고 국내와 해외를 통틀어 23회의 개인전과 350회의 단체전을 열었을 정도로 열성적인 창작을 하는 화가다.
20대 약관의 나이에 한국미술의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으며 국립현대미술관이 매년 개최하는 <젊은 모색전>에 초대받았고,동경도미술관의 <아시아 현대미술제>라든가 <회화의 회복-한국미술 21세기 주역전>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굵직굵직한 전람회에 참여했다.그만한 나이에 이 정도의 개인전을 한 화가는 손꼽을 정도라고 한다.일련의 작품 전시를 통해서 ``시대를 앞서 읽어내는 감각과 이를 예술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혹자는
``전통적인 동양화를 현대적인 감성과 미의식으로 새롭게 환생시킨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하정민은 1996년 국내에 가장 권위 있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예술성을 공인 받았다. 더구나 이 공모전에서 동양화가가대상을 차지하기는 그가 최초라고 한다.2000년 한국미술정예작가상, 2001년 마니프 서울국제아트페어 우수상,대한민국 회화대전 대상,미술세계 작가상 등 굵직한 상을 거푸 거머쥐며 인기작가의 반열에도 올라섰다. 이쯤되니 미술계에서의 영향력도 커질 수밖에.미술협회 청년작가위원장을 3년동안 맡으며, 청년작가들 발굴, 양성에 밑거름이 되기도 했고 현재는 서울미술협회 이사,국가보훈문화예술협회 한국화분과위원장 및 이사 등을 맡고 있다.여기저기서 심사위원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가뜩이나 빼곡한 스케줄이 더욱 복잡해지곤 한다.

뛰어난 스페셜리스트이자 전방의 제너럴리스트

자, 이쯤 해서 슬슬 그가 화가란 직업 외에 다방면에 촉수를 뻗치고 있는 것들에 얘기해 보자.
우선,일러스트레이션 직업부터,작년 한 해만 해도 그는 5권의출판 서적의 표지및 삽화를 그렸다.작가 윤대녕과 함께 한 그림소설 <에스키모 왕자>,화제의 베스트셀러 <지선아 사랑해>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이해인 수녀의 거의 모든 작품집 그림을 도맡았고,월간 샘터와 함께 일해 온지도 여러 해째다. 또 하나,전시 매니제먼트에 대한 그의 관심이다.전시 기획자로 참여한 횟수만 200여회/ 가장 최근에 기획한 전시회로는 5월 다양한 전시회가 있고 올 하반기는 예술의전당에서 개최되는 국제아트페어에 매달릴 참이다.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녹록치만은 않을 텐데, 홍익대와 한남대에 출강하는것은 물론,그의 시간 중 교육원 강의나 개인레슨 등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수강자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인사도 여럿이다.

``흔히 스페셜리스트라고 하면,오로지 한 분야에만 매달려 그일에 모든 걸 바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외국의 저명한 학자가 업적을 쌓은 후 돌연 현대 무용가가 되어 세상을 감탄시키는 일이 저에겐 생소하게 들리지 않습니다.제가 가진 재능과 능력으로 각 분야에서 새로운 뭔가를 펼칠 수 있다면,그리고 그것이 훌륭하게 소화되고 받아들여진다면 당연히 그렇게 가야 한다고 여기죠,``
그는 제대로 짚어냈다. 우리가 바라는 성공하는 인간형은, 한 우물을 깊게 판 스페셜리스트인 동시에 그 기준을 토대로 대역을 넓혀 가는 제너럴리스트이기도 한 것이다.                    

예술, 대중과 통하다

물론 그도 이젤 앞에 섰을 때는 예술가의 비범함이 우러나겠지만, 자기만의 세계에서 따로 노는 까탈스런 예술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그렇다고 해도 그가 펼치고 있는 이런 활동들이 이른바 예술적 영감을 소모시키는 건 아닐까,하는 오지랖 넓은 걱정이 스친다.
``다소 산만해 보일 수도 있는 직업들이지만, 크게 보면 모두 아트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이죠. 1교시 영어,6교시 수학처럼 하나의 테두리 안에 일맥상통하는 게 있어요. 아웃-풋이 다를 뿐 이죠.``
하정민은 예술,특히 미술이 대중과 만나는 공간에 한계가 지어진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워 그 간격을 좁히는 데 자신의 힘을 기꺼이 내어주고 있다. 대중들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책의 삽하를 선택했고 보다 좋은 전시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스스로 기획에 뛰어 들었다. 화가 지망생 일반 아마추어들 교습을 맡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언제인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을 하여 사람들을 아연실색케 한 적이 있었다. 이 말의 진의에 대하여 그는 ``예술이 무엇인가를 관념적으로 정의하려는 인문주의자들에게는 예술이 흡사 사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예술을 이해하고 함께 하려는 대중들에게는 예술은 재미있고 유익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인터뷰 당시 직접 확인한 바는 아니지만, 하정민의 이 같은 활동은 예술은 항상 대중과의 소통을 꾀해야 한다는 백남준의 예술 철학과 일맥상통하리라.그는 대중과 예술의 화해자 역할을 선택했고, 내 안에 있는 것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자유를 맘껏 누리고 있다.

그가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면서도,원대한 인생 플랜을 품고 있어도,길 위의 나비처럼 자유로워 보이는 이유다. -우먼골프 5월호  2004-05-21

 

====>> [자료 모음]

 

순수한 영혼의 매력을 가진 男子, 하정민 예술가

 

일곱 색깔을 지닌 예술가.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영혼의 매력을 가진 예술가 하정민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따뜻하다. 그의 작품 속 색들은 눈에 한 가득 들어와 세상을 밝게 하고 마음을 따뜻한 온기로 채워준다. 부드러운 촉감이 전해지면서 향기로운 꽃 내음을 한껏 품고 있는 그가 궁금해졌다.

   
한껏 추운 겨울, 옷깃을 여미며 총총걸음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광주시립미술관 인사동 갤러리 LIGHT에서 열렸던 개인전에서 하정민 그를 만났다. 화가라고 하기엔 너무 패션과 일상의 세련됨이 카리스마 넘치는 그는 이미 우리에게 대한민국미술대전의 대상수상자로 그림은 화단에서 검증을 받았지만 그의 노력은 어느덧 자기의 나이보다도 많은 개인전을 한 열정적인 예술가다.

50여회가 넘는 국내·외에서의 개인전 개최와 700회가 넘는 단체전 및 국내·외 초대전에 참여할 정도로 놀랄만한 창작활동을 보여주는가 하면, 책과 음반, 무대미술, 의상, 다양한 아트상품 등에 자신의 작품 이미지를 활용하여 대중들에게 보다 친숙한 화가로 다가가고 있다. 왠지 그의 이름을 보면 여자일 것 같고, 그의 경력을 보고 있으면 나이 일흔이 넘은 예술가 일 것 같았지만 그의 나이 이제 마흔 일곱이다. 어찌 보면 예술가 치고는 아직도 성장해 나아가야할 나이지만 그는 이미 한국 미술의 차세대 주자로서 한국 미술계를 이끌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제보다 값진 오늘을 위해 누구보다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서 소소한 일상과 함께 내일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첫 사랑 같은 그림과의 만남
예술가의 기질이 남다른 그의 꿈은 믿기 힘들지 모르지만 권투선수였다. 장남이 위험한 진로를 선택하는데 있어 부보님의 반대는 심했고 그는 권투보다 두 번째로 잘하는 미술을 선택했다. 대학 후에도 자신의 선택에 두려움과 과연 이 길이 나의 길일까 하는 의문은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점점 미술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마치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작은 떨림을 느끼며 화가의 길을 걷겠노라 다짐했다.

“그림은 저에게 있어 첫 사랑과 같은 존재에요. 그래서 일까요. 작은 떨림으로 시작한 그림은 제 삶의 전부가 되어버렸죠. 물론 저에게 그림 말고 더 나은 재능이 있다면 언젠간 그림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 같아요. 그림을 그릴수록 작품 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그 떨림은 더욱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20대 약관의 나이에 한국미술의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으며 국립현대미술관이 내년 개최하는 ‘젊은 모색전’에 초대받았고, 동경도 미술관의 ‘아시아 현대 미술제’, ‘회화의 회복-한국미술 21세기 주역전’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굵직굵직한 전람회에 참여했다.

1996년 국내에 가장 권위 있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그는 동양화부문과 서양화부문 모두를 통틀어 수상을 한, 한국 미술계에 유래가 없는 주이공이기도 하다. 2000년 한국미술정예작가상, 2001년 마니프 서울국제 아트페어 우수상, 대한민국 회화대전 대상, 미술세계 작가상 등 굵직한 상을 거머쥐며 인기작가의 반열에도 올랐다. 이쯤 되니 그는 미술계에서의 영향력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미술협회 청년작가위원장을 3년 동안 맡으며, 청년작가들 발굴, 양성에 밑거름이 되기도 했고, 37세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을 맡았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서울미술협회 수석부이사장, 국가보훈문화예술협회 수석부회장, 한국 용산 문화예술인 총연합회 회장 등을 맡으며 그림의 만난 그 첫 사랑의 떨림 그 느낌 그대로를 간직한 채 자신의 걷고자 하는 길에 최선을 다하며 걷고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딸 바보’
화가들의 그림에는 모두가 테마가 있듯 하정민에게도 그렇다. 초창기에는 도시풍경이 테마였다면 그 다음은 꽃, 그리고 사랑에 대한 연인의 모습이다. 2009년은 그에게 잊지 못할 날이다.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소중한 딸을 하늘로부터 받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딸이 태어난 이후 그의 작품은 예전작품에 비해 더욱 따뜻했고, 향기로운 꽃 내음까지 나기 시작했다.

   
미니비니-하늘의 선물 78×39㎝
그의 작품 곳곳에는 ‘미니비니’라는 애칭을 볼 수 있다. ‘미니비니’의 뜻은 하정민의 ‘민’과 그의 소중한 딸 하윤빈의 ‘빈’을 따서 만든 애칭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 겨울편지, 꽃으로 온 사랑, 소중한 사람 등은 사랑에 대한 연인을 모습은 딸을 모티브로 한 작품들이기도 하다.

“윤빈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저의 생각과 가치관은 많이 바뀌었어요. 결혼 전에는 미술계의 선구자로써 그리고 세계적인 화가가 되는 것이 제 인생의 전부라 생각했지만 윤빈이가 태어난 후에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 제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죠. 윤빈이와 함께 작업을 하고, 작품 세계를 구상하고... 친구 같은 아빠가 되는 것이 저의 또 다른 목표가 되었어요.”

소중하게 얻을 딸, 윤빈이의 이야기를 하면서 하정민은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미소를 품은 아빠였다. 최근 자신의 딸을 각별히 아끼는 아버지를 가리키는 신조어 ‘딸 바보’가 신드롬처럼 불고 있다. 하정민 역시 이 시대의 진정한 딸 바보가 아닐까.

대중과 함께하는 예술가를 소원하다
하정민. 그는 한국 화가이자, 출판 일러스트레이터, 전시 기획자, 대학교수 등 그를 뭘 하는 사람인지 딱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가 이렇게 다방면에 발을 디뎌 놓는 건 대중과의 간격을 좁히기 위함이었다. 대중들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책의 삽화를 선택했고 보다 좋은 전시를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스스로 기획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가 그린 수많은 책들은 서점의 베스트 셀로로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와인, 코르셋, 한복, 아트상품 등으로 우리들의 삶속에 또 다른 감동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의 바람과 목표가 있다면 한국 미술계가 잘 되는데 일조하고 싶다고 전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예술가라하면 모래알 같이 흩어져 자기밖에 모르는 존재로 생각하지만 그는 이러한 생각을 깨고 싶어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보다 더 미술계에 위대한 인물들이 문화·정치계에 많이 나와 정말 닮고 싶은 예술가, 직업의 만족도와 선호도가 높은 직업이 되기 위해서 더욱 힘쓴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그의 또 다른 목표이자 바람은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가 봉사의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의 나이 마흔이 넘어설 무렵이었다. 그는 문득 ‘세상 속에서 받은 사랑을 과연 되돌려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피스프렌드’라는 아프리카 지원 NGO단체에서 활동하며 지난 2007년 ‘아프리카 친수의 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40대 중반이라는 뒤늦은 나이에 올린 결혼식에서도 그는 축의금으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대신, 필리핀 나환자촌 어린이들을 위해 교회를 짓고 기증했다.

“저는 제가 가진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죠.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을 되돌려 주고 싶어요. 저는 언제든 모든 것을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요. 그래서 겁이 없을 수도 있죠. 살다보면 버려야만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봉사를 통해 많이 느낄 수 있었어요. 지금 현재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생들에게 미술지도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이 나이가 들면 오지의 어린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목표이기도 하죠.”

젊은 시절, 열정에 앞서 두려울 것 없이 화가라는 직업의 사회적 인식을 높이고 자부심을 키우고 싶어 부와 명예를 꿈꾸며 앞만 달려왔던 그가 이제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지의 미술 선생님을 꿈꾸고 있다. 비록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시간이지만 누구보다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남자 하정민이 꿈꾸는 내일의 마음 온도는 36.5℃다.  -골프데일리 최아름기자 2011년 02월 0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