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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 남양주 홍릉 (홍릉과 유릉)

나무향(그린) 2007. 1. 22. 21:04

종 목 : 사적 제207호

명 칭 : 남양주 홍릉과 유릉 (南楊州 洪陵과 裕陵)

분 류 :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조선시대

수량/면적 : 1,211,286㎡

지정일 : 1970.05.26

소 재 지 : 경기 남양주시 홍유릉로 352-1 (금곡동)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 : 국유

관리자 : 홍유릉관리소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홍릉 능침 - 문화재청

 

  ▲▼ 재실

  

 


 


 


 


 

 △ 사적 제207호 - 남양주 홍릉과 유릉 / 홍릉. 130409.

 

-홍릉은 조선 26대 고종과 그의 부인인 명성황후의 무덤이다. 고종은 재위기간 중에 외세의 침략에 대처하지 못하고, 내부에서의 정치적 변화로 인해 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등을 겪었다. 명성황후는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비운의 왕비이다.

명성황후의 무덤은 처음에 청량리에 있었으나 풍수지리상 불길하다 하여 고종의 무덤에 합장하였다. 광무 원년(1897) 대한제국 선포로 홍릉은 지금까지의 무덤 제도와 다르게 명나라 태조 효릉의 무덤 제도를 본뜨게 되었다. 12면의 병풍석을 세우고, 면석에 꽃무늬를 새겼으며, 난간 밖으로 둘레돌과 양석을 세우지 않았다. 무덤 아래에는 정자각 대신에 앞면 5칸·옆면 4칸의 침방이 있는 집 즉, 침전을 세웠으며 문·무인석과 기린·코끼리·사자·낙타 등의 수석을 놓았다. 문·무인석은 크고 전통적인 기법으로 조각되었다. 

 

*석물들은 정자각 뒤 능침에 문인상과 무인상이 자리 하는데, 홍릉 유릉은 홍살문을 들어서면 바로 석상이 줄을 있는다. 초대 황제 제국으로서의 위엄을 가추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중국의 황제릉 제도를 본따온 결과라 한다. 홍릉 유릉은 정자각이 일자형 으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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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홍릉은 조선 제26대 고종과 비(妃)인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의 능이다. 고종은 1919년 1월에 죽어 3월 홍릉에 초장봉릉(初葬封陵)되었고, 명성황후는 1895년 8월 학살당하여 같은 해 10월 청량리 홍릉에 장사했다가 1919년 1월 홍릉으로 이장했다.

 

유릉은 조선왕조 제27대 순종과 그의 비 순명효황후 민씨(純明孝皇后閔氏) 그리고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尹氏)의 능이다. 순종은 1926년 4월에 죽어 6월 이곳에 초장봉릉되었고, 순정효황후는 1904년 9월에 죽어 11월 성동구 능동 유릉에 장사했다가 1926년 6월 이곳에 천릉되었다. 순정효황후는 1966년 1월에 죽어 이곳에 묻혔다.

 

홍·유릉의 특징은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선포되고 왕이 황제가 됨으로써 능역조성도 명(明)나라 태조의 효릉(孝陵)을 본받았다는 데 있다. 즉 종래의 정자각(丁字閣) 대신 '一'자형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寢殿)을 세웠으며, 양석(羊石)과 호석(虎石) 대신 홍살문까지 기린·코끼리·해태·사자·낙타·말의 순으로 석수(石獸)를 세웠다. 또 문인석의 금관조복(金冠朝服)과 무인석의 성장(盛裝)이 강조되었다. 홍릉의 석인(石人)은 전통적 수법을 따르고 있는 데 비해, 유릉의 것은 매우 사실적이고 개성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