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 스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사랑의 장 (21) 사랑, 내가 사라지는 위대한 경험

나무향(그린) 2018. 7. 9. 08:31

 

사랑하는 이여, 우리 둘 사이에는

이름 모를 신(神)이 존재합니다.

-칼릴 지브란

 

 

칼린지브람 책을 접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른 채 그의 글에 빠져들었다. 사랑 경험도, 인생의 쓴맛도 맛보지 못한 나이였지만 그의 영혼의 순례와도 같은 글들은 사춘기였던 나를 사로잡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의 글들이 나조차도 알 수 없던 내 안의 신성한 세계로 어린 나를 인도했던 건 아닐까?

 나는 그의 책 <<예언자>>,<<사람의 아들 예수>> 를 읽으며 서양 종교에 대한 이해를 넓혔고, 선과 악으로 나뉘는 딱딱한 교리적 해석이 아닌 종교가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승려지만 예수님에 대한 깊은 존경이 있는 것은 어쩌면 어린 나이에 칼릴 지브란을 만났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에게 크게 감사한다.

 그리고 그때 그 나이, 나를 더욱더 두근거리에 만든 건 칼릴 지브란과 그의 영적 동반자인 메리 해스켈이 나눈 사랑의 편지였다. 아직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한 십대 소년의 마음을 뒤흔든 그의 글들.

 

 나는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며 보낸 많은 긴 밤들을 칼릴 지브란의 시로 마감했다.

 

 보이는 사랑은 작습니다.

그것 뒤에 있는

거대한 사랑에 견준다면….

 

 

 그의 글에 담긴 사랑과 영성의 성스러운 어울림은 나를 알 수 없는 깊은 감동으로 밀고 갔다. 사랑이란 걸 해본 적도 없었으면서, 글 속에 담긴 사랑이 이미 내 사랑의 경험인 것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사랑이 그대들을 손짓해 부르거든 그를 따르십시오.

 시록 그의 길이 힘들고 가파를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를 감싸 안으면 그에게 몸을 맡기십시오.

비록 그 날개 속에 숨겨진 칼이 그대들에게 상처를 입힐지라도.

 

 언젠가 나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면 나 역시 칼릴 지브란의 말처럼 아무런 계산이나 두려움 없이 오직 사랑에 내 존재를 맡기겠노라 다짐했다. 그 사랑 뒤에 정말로 깊은 아픔이 존재한다 하더라고 그 길을 묵묵히 걷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사랑이란 그렇게 마음속으로 만반의 준비를 한다고해서 오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이란 녀석은 마음을 쓰면 쓸수록 더 멀어지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나다 문득 알게 되었다. 나에게도 그토록 그리던 사랑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사랑은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아니 오히려 내 의지에 반하여 자기 마음대로 찾아왔다는 사실을.

 승려가 첫사랑을 고백하는 건 무척이나 쑥스러운 일이지만, 그랬다,

그때가 내 첫사랑이었다. 준비가 되었건 되지 않았건 나의 계획이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불쑥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처음 보는 귀중한 손님, 그게 내가 정의하는 첫사랑이다.

 그분은 미국에서 온 선교사 였다. 일곱 살 연상의 그녀는 나와 친구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었고, 우리는 그녀가 한국어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녀와 나는 언어 공부 이외에도 공통 관심사가 많았는데, 엔야의 음악을 좋아했고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레미제라블 같은 뮤지컬을 좋아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만날 때면 그녀가 좋아 할 만한 음악을 녹음한 테이프를 준비하곤 했다. 그러면 그녀는 직접 구운 쿠키나 파이를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음악이야기, 철학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 둘만 따로 만날 시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와의 다음 만남을 항상 기대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이 단순한 설렘이 아는 사랑이었음을 곧 깨닫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애초에 짝사랑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녀가 보기에 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녀는 선교사로 활동하다 반년 후 미국으로 돌아가기로 예정돼 있었고, 미국엔 그녀의 오랜 연인도 있었다. 이렇게 명확한 걸 가지고, 에휴.... 근데 알다시피 이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사랑이 오면 사랑은 내 삶의 작은 일부가 아닌 내 삶의 전부가 된다. 오직 사랑 하나만을 남겨놓고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생각은 항상 그녀 주위를 빙빙 돌고, 나의 에고의 벽은 사랑 앞에 하나씩 무너져 완전한 무방비 상태가 되어간다.

 그녀를 생각하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는 듯한 행복감을 느꼈고, 그녀가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내 영혼의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경험했다. 정말 무척 행복하면서도 너무도 아팠다.

 

 그녀가 귀국하는 날이 보름 앞으로 다가오자, 내 안의 이기심들은 서서히 사라지며 내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말하곤 한다. '그냥 쉽게 좋아하는 감정을 사랑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는, 그 마음의 출발이 그 사람이 아니고 나 좋은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 이라고, 그때 나는 마치 내 안에 그녀만이 존재하는 듯한 경험을 했다. 나 좋은 것이 아닌, 그녀의 존재로부터 세상 모든 것이 시작되는 듯한 감정.

 아! 이래서 칼릴 지브란은 사랑하는 사람과 나 사이에 이름 모를 신이 존재한다고 했구나! 그때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이미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말들은 내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그 후 나는 내 스스로가 많이 성숙해진 기분이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 또한 많이 변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한국을 떠나고 3년 후, 나는 그녀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그녀의 결혼 소식을 알리는 편지, 오랜 연인과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그녀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남부로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럴 돈도,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나를 막아섰던 것은, 결혼하는 그녀를 보고 내 자신이 힘들어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었다.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소포로 부치는 것으로 축하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만난 건 그후 두 해가 더 지나서였다. 대학 친구들과 함께 졸업을 기념하며 자동차로 대륙 횡당 여행을 떠났을 때, 그녀가 사는 지역에 들러 만난 것이이다. 그녀와 함께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준 그녀의 남편은 그녀처럼 선량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대학 졸업 후 나는 보스턴 근처의 캠브리지에 살면서 석사 공부를 하게 되었다. 19세기 말, 칼릴 지브란의 가족이 레바논에서 처음 미국으로 이민을 와 정착했던 곳이 바로 보스턴의 사우스 앤드라는 동네였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사우스 앤드는 대서양을 건너온 레바논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보스턴의 대표적 슬럼가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전형적인 뉴잉글랜드풍의 아름다운 붉은 벽돌 건물들이 즐비한 아름다운 동네다.

칼릴 지브란은 이곳에 살면서 이민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영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고, 그의 그림 실력을 알아본 선생님의 도움으로 화가로서도 인정을 받게 된다. 1904년, 처음 가진 개인전 때 열 살 연상의 메리 해스켈은 그의 예술성과 전재성에 매료되어 평생 그를 후원했다. 그리고 칼릴 지브란은 메리 해스켈에게 꾸준히 사랑과 삶의 성찰이 담긴 편지를 보냈고, 바로 그 편지들이 내 십대,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심장에 깊게 파고들어 남아 있는 것이다.

 

 사랑이 그대에게 말하거든 그를 믿으십시오.

비록 사랑의 목소리가 그대의 꿈을

모조리 깨뜨려놓을지라도,

사랑은 그대의 성숙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대를 아프게 하기 위해서도 존재합니다.

 

 칼릴 지브란의 애정 어린 편지를 받던 메리 해스켈은 보스턴을 떠나 미국 남부로 이사를 하고, 3년 뒤 칼릴 지브란에게 결혼 소식을 알렸다. 연상의 그녀들, 미국 남부로 떠나 3년 뒤 결혼 소식을 알린 그녀들, 칼릴 지브란의 사랑과 나의 풋사랑의 공통점을 발견하며 나의 마음속으로 내 사랑을 더 키우고 포장했던 듯도 싶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토록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때는 얼마나 가슴이 에이고 아팠는지... 애뜻한 마음은 사라졌지만 그곳엔 그녀에 대한 감사로 채워졌다. 사랑을 경험하게 해주어서, 내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해주어서, 내 안에 나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 가득한 경험을 하게 해주어서, 그 위대하고도 신성한 감정을 알게 해주어서….

 

 

 

 

 

"사랑,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날 문득

손님처럼 찾아오는 생의 귀중한 선물입니다."

 

-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중에서.........P170~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