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벤다꽃이 필 때 / 이형권
보랏빛은 슬픈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꽃밭에 가면 마음이 들뜨기 마련이지만
보랏빛 라벤다밭에 가면
발길이 절로 멈춰지고 마음이 서늘해진다.
아련한 기억 속의 바람 한 줄기가 살아나
가슴 한 곳을 스치고 간다.
나의 생은 어느 길목을 지나가는 것일까.
아침에 또 한 사람의 부고가 날아왔다.
그의 향기는 라벤다꽃처럼 깊고 슬펐지만
소멸은 무정하고 냉정한 법이다.
잠시 피었다 지는 꽃처럼 잊혀질 것이다.
2천미터의 고봉이 펼쳐지는 설산에 가면
한 철을 짧게 살다가는 꽃들의 나라가 있다.
시린 눈송이들이 후둑둑 떨어지더니
홍적기의 밤처럼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 시간의 파문을 견디며 살아난 꽃들이
축일을 열고 스스로 어여쁜 노래를 부른다.
생은 눈부시게 피었다가 소멸하는 들꽃과 같으리라.
'▒▒▒▒▒※※☆▒▒ > 이형권무심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0) | 2017.11.24 |
---|---|
鳴玉軒에서 / 이형권 (0) | 2017.11.23 |
여름 산사 / 이형권 (0) | 2017.11.21 |
굴업도 / 이형권 (0) | 2017.11.20 |
혜호에서 / 이형권 (0) | 2017.1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