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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98호 - 고양 서오릉 (홍릉: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

나무향(그린) 2014. 11. 29. 06:48

종 목 : 사적 제198호

명 칭 : 고양 서오릉 (高陽 西五陵)

분 류 : 유적건조물 / 무덤/ 왕실무덤/ 조선시대

수량/면적 : 1,870,267㎡

지정일 : 1970.05.26

소 재 지 : 경기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475-92번지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 : 문화재청

관리자 :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 서부지구관리소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사적 제198호 - 고양 서오릉 (홍릉: 영조의 첫 번째 비인 정성왕후의 능). 141122.

 

-홍릉은 영조의 첫 번째 비인 정성왕후의 능이다. 영조는 정성왕후의 능지를 정하면서 장차 함께 묻히고자 왕비의 능 오른쪽에 자리를 비워두고 능의 석물 등을 쌍릉의 형식에 맞추어 배치하였다. 그러나 영조의 능은 정순왕후와 함께 동구릉에 자리 잡게 되었고, 홍릉의 오른 편은 현재 빈 상태로 석물만 쌍릉 양식으로 남아 있다. 홍릉의 봉분에는 병풍석은 없으나 난간석이 설치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숙종의 명릉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와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의 제도가 잘 반영되어 있다 한다.

 

=이러한 조영을 ‘우허제(右虛制)’라고 한다. 왕비가 먼저 승하하여 능을 조성할 경우, 왕이 훗날 자신도 왕비와 함께 묻히기 위하여 능의 오른쪽 자리를 비워두는 것을 말한다. 영조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조강지처였던 정성왕후의 옆자리에 묻히길 바라면서, 홍릉을 우허제에 의거하여 조영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영조가 승하한 지 2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홍릉의 옆자리는 비어있다.  

 

≡영조가 승하하고 정조가 즉위한 1776년의 '정조실록' 3월 22일자의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상소와 하교가 실려 있다 한다.

처음 산릉을 홍릉에 정했다가 의논이 한결같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과 예조의 당상에게 명하여 풍수상의 길지를 살펴보도록 했었다. 이에 이현모가 상소하기를

 

"홍릉 위쪽의 비워 놓은 자리는 곧 영조께서 유언하신 곳으로서, 선왕께서 오늘날의 처지를 미리 염려하여 평소에 처리해 놓으신 것인데, 어찌 이를 버리고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풍수의 논리는 땅속의 일이라 아득하여 알기 어려운 것이니, 선왕의 유언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중요한 관계가 있는 일에 있어서는 진실로 마땅히 신중하게 살펴서 해야 하는 것이다. 장릉(長陵)의 동구(洞口) 자리도 또한 먼저 정해 놓은 곳이었으니, 유독 선대왕께서 분부를 남겨 놓은 데가 아닐 수 있겠느냐?"  하고, 이현모의 관직을 박탈하도록 명하였다 한다.

 

결국 정조의 하교 이후 영조의 왕릉은 현재의 위치인 동구릉 내 영릉으로 결정되었고, 홍릉의 오른쪽은 영원히 비어 있는 채로 남아 있게 된 것이라 한다.

 

 ▲ 그리하여, 조선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와 함께 동구릉의 원릉에 쌍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