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아, 어처구니가 없다 / 김신용

나무향(그린) 2013. 10. 15. 08:21

 

아, 어처구니가 없다 / 김신용

 

맷돌을 돌리려는데 아, 어처구니가 없다
오래 쓰지 않아 마루 밑에서 나무로 된 손잡이가 삭아버린 것


맷돌에 어처구니가 없으니 손잡이인, 그 어처구니가 없으니
그냥 돌덩이뿐이구나 무거운 돌덩이만 덩그러니 놓여 있구나


갑자기 쓸쓸해진 파장의 가설무대 같구나
맷돌의 옆구리에 박혀 마치 척추처럼 돋아 있던 그것


손때 묻어 닳고 닳아 반들반들 윤이 나던 그것
어진 짐승처럼 부드러운 표정이면서도 뿔처럼 단단하던


그 어처구니가 없으니 척추 같았던 그 손잡이가 없으니
돌은 돌로 되돌아가고 외계 같은 황량함만 남는구나


콩을 갈아 손두부를 만들던 국수를 만들던, 돌이
마치 둔부처럼 둥그렇게 포개져 있던, 그 두 개의 돌이
이제 체위도 잊어버린 청맹과니 같은 눈빛을 하고 있구나


메밀 같은, 딱딱한 껍질의 날곡도 부드럽게 분말로 만들어주던
저작이 끊겨버렸으니
돌의 용광로에서 이글거리던 불길이 꺼져버렸으니

 

 

김신용1988년《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버려진 사람들》 《바자울에 기대다》 등이 있다.

이번 시집에는 〈이슬의 벤치〉 외 54편의 시를 수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