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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서울 주택가에 자리잡은 안양암

나무향(그린) 2011. 11. 23. 10:17

 

 

 

 

 

 

 

 

 

 

 

 

 

 

 

 

 

 

-창신동 주택가에 자리잡은 안양암은 규모가 작은 절로 별도의 일주문(一柱門)은 없으며 커다란 화강암 바위를 등지고 있는 관음전과 중앙에 대웅전이 있다. 안양암은 대한불교 원효종(元曉宗)의 총본산으로 1926년 이태준(李泰俊)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과 관음전 외에도 명부전ㆍ 금륜전ㆍ천오백불전ㆍ영각ㆍ삼신각ㆍ칠성각ㆍ요사채 등이 있다.
마애보살상은 커다란 화강암 바위의 동쪽 면을 파서 얕게 양각한 것으로 그 위에는 목조 가구(架構)의 전각이 세워져 있다. 전체적으로 반원형의 석감(石龕)을 얕게 부조하고 그 안에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현재 보살상 앞에는 불단(佛壇)이 놓여져 있어 무릎 이하 부분이 가려져 있으나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마애보살상 앞에는 팔각형의 석조 기둥이 좌우에 세워져 있고 기둥을 잇는 돌에 '觀音殿' 이라고 새겨져 있다.
전각의 왼쪽 편에는 마애불과 관련된 100여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불상을 조성하는데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명문은 얕은 음각선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에 정확한 판독이 어려우나, 그중 “□□삼년기유년(□□三年己酉年)”이란 내용으로 보아 1909년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명문에 의하면, 이 보살상을 조각한 사람은 석공(石工)으로 되어 있고 명문을 새긴 사람인 김천보(金天輔)는 각수(刻手)라 하였다.
마애보살상은 크기가 커서 전각 전체를 꽉 채우고 있는 것으로 일정한 두께의 얕은 부조에 드러나는 밋밋한 형태감은 조선 말기의 조각 솜씨을 보여준다. 머리에는 원통형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데 보관 중앙에 좌상의 화불(化佛)이 간략하게 표현되었으며 관대(冠帶) 좌우에는 수술장식이 늘어져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보아 관음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나 여래가 입는 법의를 입고 있으며 손에는 아무런 지물도 쥐고 있지 않다. 넓은 얼굴에는 백호(白毫)와 눈ㆍ입만 채색되어 있으며 코는 낮고 뭉툭하여 전반적으로 보살상의 인상이 무뚝뚝해 보인다. 대의(大衣)는 양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는 통견(通肩)으로 걸쳤으며 어깨선은 이중으로 표현되어 팔꿈치 아래까지 내려와 있다. 두 손은 각각 가슴 앞과 배 부분에 두고 있는데 왼손은 엄지와 둘째손가락을 맞대고 있고 오른손은 다섯 손가락을 다 펴고 있다. 광배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연결된 키 모양으로 네 줄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광 바깥쪽에는 산스크리트어로 '옴'자를 양각하였다.
이 마애관음보살상에 보이는 입체감이나 자연스러움을 살리지 못하여 전반적으로 밋밋한 형태감이나 세련되지 못한 조각기법 등은 서울 홍은동 보도각 마애보살좌상이나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등 고려 후기 이후의 불상에 나타나는 특징이다. 안양암 마애보살상은 이 두 보살상의 불상양식을 계승하여 근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름에서 보살상을 보살좌상으로 표기하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