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룡사와 비우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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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실학자 이수광, 비 새던 집서 ‘지봉유설’ 집필
비우당은 조선시대 실학자인 지봉 이수광(1563~1628)이 저서 ‘지봉유설’을 지은 곳으로 유명하다.
비우당(庇雨堂)은 ‘비를 피할 만한 집’이라는 뜻이다. 이수광이 지었다는 ‘비우당기’를 보면 이수광의 외가 5대 할아버지인 유관 대감이 이곳에 초가삼간을 짓고 살았는데, 비가 오면 우산으로 빗물을 막고 살았다는 일화가 기록됐다.
당시 유관 대감은 정승답지 않게 동대문 밖 지봉(芝峰) 아래 작은 초가집에 살았다. 초가는 비가 오면 방에 비가 새는 집이었다. 비가 올 때마다 대감이 아내에게 한 말인즉 “우산도 없는 집은 이 비를 어찌 막을꼬”였다고 한다.
이후에 이수광의 아버지는 이 집을 조금 넓혔다. 혹여 누가 “소박한 집”이라고 말하면 아버지는 “우산에 비해 너무 사치스럽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비록 전해 내려오는 일화지만 이 집에 거주했던 사람마다 지위를 떠나 검소하고 겸손한 생활을 실천하며 살았음을 보여주는 곳이다.
비우당 좌편에 보이는 우물은 ‘자주동샘’이라고 하는데, 단종의 비인 송씨(정순왕후)가 비단을 빨면 자주색으로 물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비우당 뒤로는 단종의 넋을 기리는 ‘원각사’라는 절이 있다.
이수광이 비우당에서 지은 ‘지봉유설’은 그가 영창대군 사건으로 관직을 내려놓고 원고를 정리하기 시작해 1614년에 편찬된 책으로 일종의 백과사전이다. 내용은 천문, 시령, 군도, 병정, 인문, 인사, 종교 등 25부 182항목으로 분류ㆍ구성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수광이 활동했던 시기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치르고, 광해군 때의 정치적 갈등과 인조 때의 이괄(李适)의 반란을 겪은 혼란기였다. 그는 이러한 어려운 정국에 살면서도 당쟁에 휩쓸리지 않았으며, 항상 강직하면서 온화한 성품을 지켰다. 지금도 그는 성실한 관료의 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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