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서울 유형문화재 제 53호
명 칭 : 중명전(수옥헌) 수량/면적 : 1동. 대지 2,399㎡(727평), 건축면적 877.8㎡(236평). 양식 2층 벽돌집 지정일 : 1983년 11월 11일 해지일 : 2006년 9월 21일자로 문화재청으로 소유권 이전. 소 재 지 : 서울 중구 정동 1-11번지 시 대 : 조선시대
01 |
02 |
03 | ||
▲우물 |
▲편액 |
▲ 안내도 |
01 |
02 |
03 |
04 |
05 | ||||
내용을 입력하세요 |
내용을 입력하세요 |
내용을 입력하세요 |
내용을 입력하세요 |
내용을 입력하세요 |
01 |
02 |
03 |
04 |
05 | ||||
내용을 입력하세요 |
내용을 입력하세요 |
내용을 입력하세요 |
내용을 입력하세요 |
내용을 입력하세요 |
01 |
02 |
03 |
04 |
05 | ||||
내용을 입력하세요 |
내용을 입력하세요 |
내용을 입력하세요 |
내용을 입력하세요 |
내용을 입력하세요 |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 이순우님 자료집을 옮겨보면, 서울 중구 정동에 있는 덕수궁 너머로 정동 극장이 있고, 그 옆으로 난 골목을 따라 조금만 들어가면 서양식 건물인 중명전이 나온다. 이른바 '을사보호조약'의 체결장소로 사람들에게 제법 알려진 곳이다.
원래는 서울 유형문화재 제 53호 였다가 관리상의 문제로 지난 2006년 9월 21일자로 문화재청으로 소유권 이전과 더불어 2007년 2월 7일에는 사적 제124호 덕수궁에 추가되어 사적으로 편입된 상태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으나 1906년 가을 이후 중명전으로 고쳐불렀다 한다.중명(重明)이란 본디 "일월(日月)이 함께 하늘에 있어 광명이 겹친다"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가 각각 제자리에 나란히 서서 직분을 다함"을 이르는 것이고, '수옥(漱玉)'은 원래 "옥을 씻는다"는 뜻으로, 폭포 따위에서 물방울이 흩어지는 모양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이 자리는 원래 미국인 선교사로 유명한 호레이스 알렌(Horace N. Allen, 1858~1932)의 집이었던 곳으로 1886년 이래 독신여자선교사의 숙소로 변하여 이곳에서 정동여학당(정신여학교의 전신)이 탄생하였고, 이 학교는 1895년까지 유지 되었다.
아관파천 직후 이곳은 왕실 도서관으로 변하였다가 1899년 미국인 한성부 기사 J. H. 다이의 설계로 단층 벽돌건물이 신축 되었으나, 1901년 11월 화재 발생으로 전소 하였고 이에 따라 1902년 5월에 이층 건물로 재건되었다. 일제강점기로 접어든 이후 서울구락부(Seoul Club)에 임대되어 1960년대까지 오랫동안 사용 된바도 있었다.
최근 복원 정비를 마친 이곳에는 유리원판 사진자료를 토대로 하여 복원한 '중명전(重明殿)' 편액이 걸려있는데 이것은 청나라 서예가 하소기(何紹基, 1799~1873)의 글씨이다. 편액의 왼쪽에 그의 이름(何紹基印)과 자(子貞)를 새긴 도서(圖書)가 낙관(落款)되어 있어 이를 확인 할 수 있다. 다만, 그의 사망 연대가 수옥헌(중명전)의 건립 때와는 수십년의 시차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서점에서 집자(集字)하여 이를 편액에 새긴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 중명전=수옥헌 - 중구 정동 1-11번지
-1900년 1월 덕수궁 별채로 건립(建立), 고종의 외교사절단 접견장 겸 연회장으로 쓰였으나, 1904년 덕수궁이 불타자 고종은 이곳으로 옮겨와 1907년 순종(純宗)에게 왕위를 물려줄 때까지 3년간 기거하였다. 중명전의 처음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며, 후에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었던 비운(悲運)의 장소다.
대한제국시기 덕수궁에는 정관헌(靜觀軒), 중명전(重明殿), 돈덕전(惇德殿), 구성헌(九成軒), 환벽정(環壁亭), 석조전(石造殿)등의 서양식 건물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덕수궁 안의 정관헌과 석조전, 그리고 덕수궁 밖 중명전만 남아있다. 중명전은 일제에 의해 덕수궁이 축소, 왜곡되면서 지금처럼 덕수궁 밖에 머물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는 덕수궁의 영역이 지금보다 훨씬 컸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중명전은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sabatine)이 설계해, 1900년 1월 준공한 러시아식 2층 벽돌건물이다. 처음에는 수옥헌(漱玉軒)이라 불렀으나, 나중에 중명전이라 불리웠다. 중명전의 용도는 주로 외교사절들을 접견하던 장소로 쓰였다고 한다.
중명전에 관한 기록은 대한제국시기 덕수궁의 역사 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1904년 4월 덕수궁 대화재 당시 화재를 피해 고종이 이곳에 머물기도 했으며, 1907년 1월 안국동 별궁(현 풍문여고 자리)에서 황태자(순종)의 가례식이 거행된 뒤 외국사절들을 이곳에 초청해 연회를 베풀기도 했다.
'▒▒▒문화재답사 ▒ > 궁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경궁 - 팔각칠층석탑(보물 제1119호) (0) | 2009.04.09 |
---|---|
창경궁 - 창경궁(사적 제123호) (0) | 2009.04.09 |
덕수궁 - 흥천사명 동종(보물 제1460호) (0) | 2009.03.17 |
덕수궁 - 함녕전(보물 제820호) (0) | 2009.03.05 |
덕수궁 - 중화전 및 중화문(보물 제819호) (0) | 2009.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