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권무심재
슬픈것이 흘러가는 시간이다 - (31) 황산에서
나무향(그린)
2017. 12. 25. 09:11
황산에서 / 이형권
쓸쓸하구나
견훤의 무덤이여
이른 새벽 자욱한 안개 속에
가랑잎만이 무수히 쌓여 있고
멀리 연무들에는 장병들의 구령 소리 들려오는데
그대의 산하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뱃구레를 적셔 줄 뜨거운 술 한 잔이 없구나
은진현 남쪽 시오리길
풍계촌 황산불사黃山佛寺에서
울화병으로 죽었다는 몇 자의 기록만이 있을 뿐
질풍 같은 원정의 세월은 마른풀처럼 쓰러져 울고 있구나
사직도 백성도 뿔뿔이 흩어져 버린 날들
완산벌에 울려 퍼지던 북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그대는 지금도 왕조의 꿈에 취해서
저 들판의 숨죽인 고요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가.
서리 묻은 신발을 끌고 황산의 언덕길을 서성이노니
쓸쓸하구나
견훤의 무덤이여
자욱한 안개 속에 가랑잎만이 무수히 쌓여 있고
그대의 산하는 지금 흐느끼고 있는 것이냐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냐
저 멀리 연무들에는 장병들의 구령 소리 쟁쟁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