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사적 제143호
명 칭 : 서울 문묘와 성균관 (서울 文廟와 成均館) 분 류 :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교육기관/ 성균관 수량/면적 : 81,673㎡ 지정일 : 1964.11.10 소 재 지 : 서울 종로구 명륜3가 53번지 시 대 : 조선시대 관리자 : 종로구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대성전(좌측 신도:신삼문에서 들어 오는길/ 우측 어도: 동삼문(어삼문)에서 왕이 들어 오는 길)
좌측 편백나무는 오륜목(가지가 5개) / 우측 편백나무는 삼강목(가지가 3개)
▲ 대선전 현판(한석봉 친필)
▲ 신삼문 좌우 은행나무 2그루(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7호)
▲ 신삼문(사람이 다닐 수 없는 문)
▲ 외삼문(동삼문, 군왕이 다닐때만 쓴다하여 '어삼문'이라고도 한다)과 동무
▲ 서무(동무,서무 각각 11간으로 맞배지붕)
▲ 재학당(문묘를 관리하는 남자 종들의 거처였다 한다)
▲▼ 제기고(제사에 사용되는 집기 보관하는 곳)
▲▼▼ 묘정비각(문묘의 연혁을 기록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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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륜당
1398년(태조 7)에 공자의 사당인 성균관 대성전 북쪽에 18칸의 규모로 건립, 동·서 양쪽으로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를 세워 성균관의 유생들이 기거하게 했다.
1590년(선조 23)에 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1606년(선조 39)에 다시 중건되었다 한다.
▲ 명륜당 편액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명나라 사신으로 왔던 주지번(朱之蕃)의 글씨다.
*주지번(朱之蕃):명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허균이 누나 허난설헌의 시를 보여주어 중국에서'난설헌집'이 발간되는 계기가 되었던 바로 그 '주지번'이다.
▼ ▼▼ 동재(식당) ▲ 서재(기숙사)
▲▲ 북소리 한 번은 기상시간, 북소리가 두 번 나면 의관을 갖추고 책을 읽고, 북소리가 세 번 나면 식당에서 식사시간.
▼▲ 진사식당(左) 유생들의 전용 식당 / 동재(右)
▲ 육일각
영조 19년 성균관에서 대사례를 행한후 왕이 사용했던 활과 화살 등 그 도구들을 육일관을 세워 보관했다 한다.
▲ 존경각(성균관의 경전들을 보관 하던 곳, 1475년(성종 6년) 한명회의 건의로 창건 하였다 한다)
▲ 정록청 앞뜰
▲ 정록청(성균관 스승님들의 거처 공간)
▲▼▼ 향관청 (제사에 사용하는 향과 축문을 보관하는 건물)
▲▼ 향관청 좌우 건물(↑서월랑 ↓동월랑)
▲▼ 서울 문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59호)
△ 사적 제143호 - 서울 문묘와 성균관. 141029.
-문묘란 유교를 집대성한 공자나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을 말한다.
문묘는 크게 제사를 위한 건물들이 있는 대성전 구역과 학문을 갈고 닦는 건물들이 있는 명륜당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세웠으나 정종 2년(1400)에 불에 타 없어졌고, 태종 7년(1407)에 다시 지은 것도 임진왜란 때 타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대성전과 명륜당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분리되어 있다. 대성전 서우(보물 제141호) 북쪽에는 제사 때 쓰는 도구를 보관하는 제기고와 잡다한 것을 두는 잡사가 있다. 명륜당을 중심으로 존경각과 향관청, 비천당, 계성사가 있으며, 남쪽 좌우에 유생들이 살면서 글을 읽던 동재와 서재가 남북 방향으로 길게 배치되 있다. 동재 동편에는 식당이 있고, 그 위쪽으로는 창고, 육일각, 잡사가 배치되어 있다.
문묘는 제향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유생들이 공부하는 유교의 중심지로 건축사 연구의 중요 자료로서 전통과 역사가 깊이 배어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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