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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93호 - 원릉(구리 동구릉) - 21대 영조

나무향(그린) 2014. 10. 21. 06:52

종 목 : 사적 제193호

명 칭 : 원릉

분 류 : 왕실무덤

수량/면적 : 1,969,675㎡

지정일 : 1970.05.26

소 재 지 :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인창동)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 : 문화재청

관리자 : 동구릉관리소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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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 제193호 - 원릉(구리 동구릉). 140511.

 

-원릉은 조선 21대 영조(英祖 1694~1776, 재위 1724~1776)와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1745~1805)를 모신 능이다. 원릉은 쌍릉으로 조영되었으며, 병풍석 없이 난간석만으로 두 봉분을 감사 안고 있다.

 영조는 조선시대의 역대 왕 중 가장 긴 52년간을 재위했으며 83세인 1776년 3월 5일 경희궁에서 승하했다.

 

 영조의 아버지는 숙종이고 어머니는 화경숙빈(和敬淑嬪) 최씨다., 경종의 동생으로 1694년(숙종 20년) 9월 13일에 태어났다 한다. 1721년 9월 26일 연잉군(延礽君)은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는 칠궁에 신위가 모셔져 있다.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는 경주 김씨로 1745년(영조 21년)에 태어나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가 승하하자, 영조는 부왕인 숙종의 유지에 따라 후궁들 중에서 새 왕비를 책봉하지 않고 1759년 6월 9일, 김한구의 딸인 정순왕후를 왕비로 간택하여 같은 해 6월 22일, 창경궁에서 혼례를 올렸다.

 

 당시 영조의 나이는 66세, 정순왕후는 15세로 조선 개국 이후 가장 나이 차가 큰 혼인이었고 그가 왕비(1759년6월 20일,영조 35년)로 책봉될 때 부모 내외는 물론 조부 김선경도 생존하고 있었다 한다. 심지어 1735년에 태어난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보다 10살이 어렸다. 열다섯 나이에 66세 영조의 비가 된 것이다.

 

≡1762년(영조 38) 5월 사도세자가 부왕인 영조에 의해 뒤주 속에 갇혀 8일만에 질식사한 사건이 임오년에 일어났다. 정순왕후는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정순왕후는 1800년 정조의 아들인 순조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수렴청정을 실시하는데, 스스로 여자국왕(女主·女君)이라 칭하는 등 실질적으로 국왕의 모든 권한과 권위를 행사했으므로 ‘여걸’이라 일컬어진다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