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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93호 - 목릉(구리 동구릉) - 14대 선조

나무향(그린) 2014. 10. 20. 08:29

종 목 : 사적 제193호

명 칭 : 구리 동구릉 (九里 東九陵)

분 류 : 왕실무덤

수량/면적 : 1,969,675㎡

지정일 : 1970.05.26

소 재 지 :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인창동)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 : 문화재청

관리자 : 동구릉관리소

자료출처 및 참조 : 문화재청

 

 

 ▲ 보물 1743호 - 구리 동구릉 목릉 정자각

 

 

 

 

 

 

 

 

 

 

 

 

 

 

 

 


 

 

 


 


 


 

 


 


 

 

 △ 사적 제193호 - 목릉(구리 동구릉). 140511.

 

-목릉(穆陵)은 조선 제14대 왕인 선조와 정비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의 능이다. 선조 33년 1600년 의인왕후 박씨가 승하하자 왕비릉인 유릉(裕陵)의 터로 정해진 곳이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선조의 능인 목릉은 원래 건원릉의 서편에 조영되었는데, 물기가 차고 터가 좋지 않다는 심명세(沈命世)의 상소에 따라 인조 8년 1630년 현재의 위치로 이장되고 유릉과 목릉의 능호를 합칭하여 목릉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그 후 인조 10년 1632년에 선조의 계비 인목대비가 세상을 떠나자 계비의 능을 왕릉의 동편 언덕에 조영하고 처음에는 이를 따로이 혜릉(惠陵)이라 이름붙였다. 그러나 세 능역 간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고 하여 이를 모두 합하여 목릉이라 했다 한다. 조선왕릉 중 세 개의 각각 다른 언덕이 조성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은 목릉이 유일하다. 2011년 12월, 문화재청에서는 목릉의 정자각을 보물 1743호로 지정하였다.

 

=선조는 중종의 손자이며, 중종의 일곱번째 아들인 덕흥대원군 초(慵)의 셋째 아들로 1552년(명종 7년) 11월 11일 한성 인달방에서 태어난 선조의 초명은 균(鈞)이며 뒤에 공(昖)으로 개명했다 한다. 선조는 명종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해, 하성군(河城君)에 봉해졌다가 명종이 후사 없이 승하하자 1567년 7월 3일 경복궁 근정전에서 조선 14대 왕으로 즉위했다.

 

 '연려실기술'에 전하는 선조의 어린 시절 얘기 한 토막을 옮겨 보면 이렇다.

 

 명종이 여러 왕손들을 궁중에서 가르치다가 하루는 '너희의 머리가 큰가 작은가 알려고 한다'며 익선관을 써보라고 했다 한다. 다른 왕손들은 돌아가며 익선관을 머리에 써보았다. 하지만 나이가 제일 어린 선조는 '보통 사람이 어찌 이것을 스겠습니까'라며 어전에 도로 갔다 놓았다 한다.

 

 이렇듯 어려서부터 영리하고 어질었던 선조는 학문에 정진하며 즉위 초에는 매일 경연에 나가 토론했고, 밤늦도록 독서에 열중하며 제자백가서를 읽지 않은 것이 없다고 전한다. 또한 선조는 훈구세력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대거 등용, 명유· 이황· 등을 우대하여 침체된 정국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고자 힘을 다했다 한다.